[이덕일 박사 강의]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왜곡된 고조선의 역사

고조선이란 책을 가지고 뭐 우리 역사 오천 년만에 처음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한쪽에서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요. 왜 우리 역사 오천년 만이냐? 이천년 만에 처음이지. 바로 오천 년만에 처음이냐? 이천년만의 처음이냐? 여기에 큰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외 나가서 우리 역사를 소개한 책들을 보면 한국사는 이천 년된 역사로 다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것은 이천 년 된 역사를 소개하는 그런 책들이 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쓴 책을 보고 그렇게 소개하는 것이죠. 그 단적인 얘가 제가 이 책에서도 누누이 말씀 드렸듯이 일단 우리 국사 교과서를 보면은 상당히 의식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공부하신 분들 모이신거 같은데 실제 여러분들도 국사 교과서 앞부분을 보면 무슨 이야기 하는지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학생들은 그러죠? 국사는 암기과목이라고. 근데 전 세계에서 국사가 암기과목으로 취급되어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왜 암기과목일 수밖에 없느냐? 단군에 관련해서 기록을 보면 우리 국사 교과서를 보면 단군에 대해 분명히 나옵니다. 나오기는.

뭐라고 나오냐면 일연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BC2333년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콤마 하나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 문장론 배울 때 콤마를 어디를 찍으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느냐?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느냐 이런 얘기를 하지요.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콤마 찍고 끝나는 것과 건국했다고 한다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라는 겁니다.

무슨 차이냐? 건국했다라고 끝맺으면 그거는 교과서를 쓰는 사람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죠. 건국했다고 한다라고 끊으면은 교과서 쓴 사람의 인식이 아니라 일연의 삼국유사에 그렇게 쓰여져 있을 뿐이다라는 걸 뜻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타 교과서에 다른 부분들을 살펴보면 과연 이 국사 교과서를 저술한 사람들이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믿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한 부분을 우리가 살펴봐야 되는데, 우리 국사 교과서는 청동기 시대 때 국가가 수립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들 다 그렇게 배웠죠? 근데 실제 청동기 시대 때에야 국가가 수립되느냐? 여기 이 사실을 의심해보신적 있습니까?

이집트 고왕국이나 잉카문명이나 마야문명 이런 데를 다 청동기 시대 아닙니다. 다 석기 시대 때 국가가 수립됐습니다. 뭐 아즈텍 문명이나 이런 걸 갖다가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세계 학계에서 상당히 망신당하죠. 유독 청동기 시대 때 국가가 수립된다라고 명기한 교과서도 한국 교과서 밖에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명기한 거죠. 저희 어릴 때 제가 한 중학교쯤 다닐 때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문제 나옵니다. 고조선, 고구려, 뭐 백제 이렇게 나와서 답이 뭔지 아세요? 고구려라고 써야 답이 됐습니다. 고조선은 국가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지금 현재의 국사교과서는 청동기 시대 때 국가가 수립된다라고 설명을 해놓고 그 다음에 청동기 시대에는 한반도에서는 BC 10세기 만주에서는 BC 13세기에서 15세기에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다. 또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보세요. 청동기 시대 때 국가가 시작되는데, 그 청동기 시대는 한반도에서는 10세기, 만주에서는 13,15세기에 수립된다라고 하면 우리 역사에서 국가의 시작은 암만 빨라도 한반도로 시작할 경우 BC10세기 이상으로 못 올라가죠?

만주에서 시작되었다고 봤을 경우도 BC15세기 이상 못 올라갑니다. 그나마 이번 개정된 교과서에서 상당히 많이 올려 잡아준 겁니다. 그 이전에는 그냥 BC8세기로 다 통일해버렸습니다.

많이 양보해서 그럼 10세기 15세기로 봐준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면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말한 BC24세기에 단군이 건국했다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됩니까? 그 이야기는 단군이 건국했다라고 말한 부분에서는 9세기에서 13세기 이상이 없어지는 게 되죠.

우리가 그냥 고조선이라고 말하지만 고조선은 이렇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셋으로 나누는데, 우리 국사 교과서 식으로 청동기 시대 때 국가가 수립된다라고 단정을 해놓고 청동기 시대의 시작은 한반도에서는 10세기, 만주에서는 13,15세기라고 할 경우에 그 빈 공간,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빈 공간에 속하는 조선은 어디겠어요? 당연히 단군 조선은 거기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교묘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는 위만조선 때 실제로 고조선이 실제했다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위만조선 때 우리 역사가 실재했고 그 나머지는 단군 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쓰면 상당한 반발이 있을 테니까 마치 단군 조선도 인정하는 듯이 모호하게 일연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뭐한다라고 써주고 실제로 청동기 시대를 거론하면서 실제 내용을 보면 위만조선부터 고조선이 실제로 있었다라고 주장을 하는 거죠.

그러면 여기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면 그렇게 따지면 우리 역사의 시작에서 단군이 없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기자조선이나 저 삼조선중에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되는데, 기자나 위만은 다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다 중국에서 왔지요. 물론 기자의 성격과 위만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그 쪽 지역이 또 동이족들이 죽 살던 지역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를 도출할 수 는 있는데, 그건 논외로 치더라도 그렇게 되면 어쨌든 기자나 위만에서부터 우리 역사가 시작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하면 중국에서 말하는 동북공정이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동북공정의 목적

중국에서 동북 공정을 제기 할 때 다들 왜 제기하느냐? 그 목적을 다 이야기할 때 만주 지역에 있는 우리 교포들이 통일되고 난 다음에 동요될까봐 미리 제기하는 거다라고 거기다 설명을 했습니다. 그럴 때 제가 몇 년 전에 한 시사 잡지에다가 글을 쓰기를 뭐라고 썼냐면 그게 아니라 오히려 동북공정의 진짜 목적은 북한 영토에 있다고 봐야 된다. 그리고 중국이 동북공정에서 하고 싶은 말하고 싶은 대상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북한이 급격한 사태가 발생해서 북한에 어떤 정치 체제가 붕괴한다고 하면 우리가 들어가서 통일할 걸로 생각하죠?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정치역학상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실제 가능한 북한이 급격히 붕괴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는 오히려 중국 쪽에서 친중 괴뢰정권을 수립하기가 훨씬 더 가깝죠. 그렇게 되면 중국 쪽에서는 미국만 설득 시키면 미국만 양해를 하면 북한 지역을 가져가는데 장애 요소가 별로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하고 난 후로 여러 매체를 했더니 얼마 전 중국 대사가 중국은 북한 지역을 동북 사성 중에 하나로 삼을 생각이 없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 이야기는 현재로서는 크게 신빙성을 두기가 곤란합니다.

왜냐면 현재 중국이 티벳트를 비롯해서 신간이나 여러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군사적 점령 상태를 다 해제하고 우리는 다른 민족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한 언제든지 그런 위협이 상존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가 무조건 우리 논리만 가지고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저 쪽에서 청동기 시대를 가지고 이야기 하면 우리도 그럼 양보해가지고 청동기 시대로 해보자 이거죠.

단일민족주의 사상과 순수혈통주의의 출원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역사를 지나치게 좁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단일민족이다 순수혈통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흔히들 보면 순수혈통이다 단일민족이다 하는 이거를 갖다가 크게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오해하냐면? 단일 민족을 주장하고 순수혈통을 주장하는 분들이 또 한편으로는 자기네 족보로 보니까 우리 조상이 시조가 중국에서 왔다 이걸 아주 자랑하거든요.

그럼 순수혈통을 주장하면서 시조는 중국에서 왔다는 걸 자랑한다? 이게 서로 안 맞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식할 때 많은 장애가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패권주의 사관과 또 하나 우리 내부에 있는 또 유학사관도 비판을 해야 합니다.

이 순수혈통주의나 단일민족 주의 사상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 원래 중국에서 우리를 바라 볼 때에 우리민족을 동이족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이족 내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말갈, 지금의 만주족 들어가죠? 몽고족 들어가죠? 그 다음 거란, 속신 이 민족들이 다 들어갑니다. 이 민족들은 언어형태도 다 같습니다. 다 같은 민족들인데 중국에서 볼 때 때에 따라서 언제는 동이족이라 부르고 언제는 동호라고 부르고 그렇게 불렀던 중국에서 바라 볼 때 동북쪽에 살던 민족의 통칭인데, 유학자들 생각에 우리는 우리의 뿌리는 이 동이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뿌리는 중화다 중국이다 해서 우리를 중국하고 연결시키고 과거에 같은 민족이었던 동이족에 속했던 여러 민족들을 오랑캐로 내 몬 거죠. 우리 맘속에서 내 몬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 뿌리는 중화에 있다 하는 사대주의 사상, 중화사상의 극치에서 나온 것이 순수혈통입니다. 순수혈통의 뿌리는 우리는 중화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다보니까 우리 역사는 자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홍산紅山문화

여기에서 보면은 이 홍산문화라는 걸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데 이 우하량牛河梁 유적이라는 게 있고 이 동산취東山嘴 제사유적이라는 게 있고, 내몽골에 가면 홍산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빨갛지 않습니까? 그래서 홍산인데 내몽골 적봉시란 곳이 있는데 내몽골 적봉시 북쪽에 보면 홍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저기를 중심으로 해서 그 일대에서 광범위하게 많은 유적 유물들이 나옵니다.

저걸 통치해서 홍산문화라고 부르는데, 중국 측 자료들을 보면 홍산문화는 중국의 한 문화다라고 설명을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 문화가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동이족의 문화이죠.

그래서 홍산문화 중에 아주 중요한 문화 중에 하나가 이 우하량 유적이라는 건데, 이 우하량 유적에서는 여신탈도 나오고 각종 옥들도 나오고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나왔습니다. 저 무덤 형태는 중국 식 무덤형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에 나타나는 고구려 때까지 나타나는 우리의 전통 무덤형식하고 같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저 쪽 답사를 가봤더니 저 우하량 유적의 한가운데를 빵 뚫어가지고 사차선 도로를 놓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기네 문화라고 해놓고 유적의 한 가운데를 파괴해서, 백m만 옆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거기는 큰 산으로 막혀있는 지역도 아니기 때문에 돌아가는데 별 지장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돌아가고 그냥 사차선 도로를 유적을 깔아뭉개고 사차선 도로를 놓고 있다라는 게 뜻하는 게 뭐겠습니까? 중국 쪽에서는 아는 겁니다. 이 홍산 문화는 동이문화고 이 홍산 문화가 계속 연구되고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중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동북 공정에 상당히 불리하다라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파괴를 하고 있는 거지요.

그 반면에 우리는 홍산문화가 뭔지를 못 들어본 분들이 대한민국 분들 중에 아마 95%이상은 될 정도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자체가 상당히 협소해져 있는 거지요.

삼조당-치우의 중국 역사 편입 작업

그 중에 또 하나 예가, 이 치우를 볼 수 있는데, 저 중국의 북경에 가보면 하북성 북서쪽으로 백 한 삼사십km를 가면 하북성 탁록현이란 곳이 있습니다. 저 탁록현에 가면 귀근원이라는 원을 갖다 커다랗게 지어 놨는데, 이름 그대로 근본으로 돌아가는 정원이다 뭐 근본으로 돌아가는 장소다 그런 뜻이죠.

저 귀근원 안에 들어가 보면 삼조당이라는 게 있습니다. 세 조상을 모시는 당이다 하는 뜻인데, 그 삼조당에 모신 세 조상, 중국 중화 민족의 세 조상이라는 거죠. 그 세 조상 중에 신농씨와 그 다음에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하는 황제와 그 다음에 치우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안에 들어가 보면 그림이 동이족의 조상 치우이고, 이건 중국인의 조상 황제인데, 중국인들은 황제를 중국민족의 조상으로 믿어서 의심치 않아 왔습니다. 전설상 뭐 중원 각 민족의 공동조상이다 라고 하는 건데 그 반면에 이 치우는 중국에서 한족의 조상으로 전혀 여기지 않아 왔습니다. 오히려 치우는 황제와 싸워 온 중화민족의 조상인 황제와 싸워 온 아주 이민족의 대표로서 자기네들 역사 바깥으로 몰았던 그런 인물이죠.

중요한 거는 중국에서 이 귀근원과 삼조당을 언제 세웠느냐가 중요합니다. 1990년대에 세웁니다. 1990년대에 중국에서는 동북공정뿐만 아니라 서북공정, 서남공정, 현재에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여러 다른 민족들 중국 민족하고는 다른 민족들의 역사를 편입시키는 작업을 하면서 귀근원을 세우고 귀근원 안에 삼조당을 세운 거죠. 그래서 삼조당 안에다가 전에는 전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치우까지도 자기네 조상으로 편입시킨 겁니다.

저기 쓰인 글씨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중국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거를 그대로 전제한 겁니다. 한번 볼까요?

치우는 뭐 전설상 중국의 삼고사신이다, 사악한 신이다 이렇게 되어 있죠. 그리고 구려족의 수령이다. 이것이 중요한 건데, 이 구려족, 이 구려족은 바로 동이족에 하나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치우가 바로 동이족의 조상이 되는 건데, 사마천의 사기나 여러 기록들을 보면 치우에 관한 여러 기록들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환단고기나 이런 책들에도 치우에 대해서 나오죠. 그래서 붉은 악마에서 막 치우를 가지고 했을 때 다들 치우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궁금하게 생각하게 하는 분들 많았는데 환단고기에 나온다. 이렇게 하면 기존 학계에서는 다 위서라고 하고 믿지 않고 있죠.

근데 치우가 역사 문헌상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사기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은 여러분들 잘 아시죠? 사마천은 흉노하고 싸우러 갔다가 패배한 이릉 장군을 옹호하다가 궁형을 당하지 않습니까? 뭐 궁형은 남성기능을 못쓰게 해서 내시나 환관같은 그런 인물로 만드는 형벌인데, 사대부로서 궁형을 받으면은 대게 궁형을 받느니 자결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냐면 사대부로서 그 치욕을 견딜 수 없다 해가지고 자결을 하던지 아니면 집안에 돈이 상당히 많으면은 많은 속전을 내고 신분은 귀족에서 서인으로 떨어지지만 목숨은 건지는 것인데 사마천은 자기 친구 위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돈이 없어가지고 속전도 못 내고 그래서 이 사대부로서 이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해서 사마천은 그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사기를 쓰지 않습니까? 바로 사기를 쓰기 위해서 난 살아남았다 하는 건데.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중국 각지로 다 답사를 다닙니다. 뭐 세계 역사상 답사의 원조가 사마천이라 볼 수 있는데, 사기에 보면 자기가 답사 다닌 기록을 다 지역을 기록해 놓습니다.

이 때 사마천은 중국의 원 조상은 시작이 삼황오제 이렇게 시작합니다. 복희 씨, 신농씨 하는 삼황부터 시작하는데 사마천이 답사 다녀보고 집안이 원래 사관집안이니까 여러 사료를 봤지만 삼황은 중국의 실재했던 역사로 보기 곤란하다. 사마천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삼황에 관한 부분은 사기에서 빼버립니다.

현재 남아있는 사기에 삼황에 관련되어 있는 부분들이 들어가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거는 당나라 시대 때 장수결이라는 인물이 집어넣은 거죠. 사마천의 실제 역사적 사실로 생각한 거는 오제부터입니다. 오제의 첫 번째가 황제이고 이 황제와 싸웠던 인물이 바로 치우라는 거죠.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이 치우라는 인물은 중국인의 조상인 황제와 싸웠던 그러니까 이게 1대1일로 싸운 게 아닌 게 되는 거죠. 각자 자기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싸우는데 저 아래 나오는 동두철액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것도 역시 사기에 나오는 기록인데, 동두철액, 치우가 머리는 동이고 이마는 철이다 이게 뭘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때 치우로 대표되는 집단은 금속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여러 중국 고대기록들에서 황제집단과 치우집단이 싸우는 그 장면을 죽 여러 사료를 종합해보면 처음에는 치우 집단이 승리를 합니다. 승리하는 이유가 저 치우집단은 동두철액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금속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황제집단은 그걸 못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러나 전쟁이 계속 오래되는 동안에 금속문명 기술이 저 쪽으로 넘어가면서 전세가 역전되는 겁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중국 한족이 인구는 동이족보다 많았던 거죠. 그래서 같은 이게 같은 무기를 지녔다면 인구 많은 쪽이 이기는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이 삼조당에 나와 있는 그림인데, 동두철액이라고 해놓고 치우가 갖고 있는건 뭘 갖고 있습니까? 돌도끼 갖고 있죠? 사람들이 자기네 조상으로 편입을 시켜놓긴 1990년도에 그야말로 환부역조라는 말 아시죠? 아버지를 바꾸고 조상을 바꾸는 걸 갖다가 환부역조해서 치우를 중국인의 조상으로 편입을 시켜놨지만 자기네 실제 조상인 황제하고 싸웠던 인물이기 때문에 황제를 보세요. 얼마나 멋있게 그려놨나? 이렇게 그려놓고 치우는 자기네 조상이라면서 아주 야만적인 모습으로 그려놓지 않습니까?

탁록현에 치우마을이라고 있는데 그 마을에서 빨래하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래서 치우에 관한 이야기나 합자동이라는 것은 보이는 강이 대릉하입니다. 만주에 가보시면 요하가 있고 요하 서쪽에 대릉하가 있고 대릉하 서쪽에 난하가 있는데 이 대릉하를 막아 놓고 대릉하를 막아 놓은 댐인데 이쪽에 있는 여기가 합자동 석기 유적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그런 유적이고 이것도 근처에 가보면 동산취 제사 유적이라고 동산취란 요쪽 지역에 가보면 우리 옛날 조상들이 하늘에 제사 지냈던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아주 조금 남아 있죠. 거의 뭐 관리를 중점 문물 보호단이라고 써놨는데 거의 방치한 상태이다 시피해가지고 아주 작은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유적들이 홍산문화, 홍산문화로 표현되는 이 중국 만주 그리고 내몽고 지역의 이 쪽 문화들이 고조선의 전사라고 볼 수 있는데, 저 홍산문화 중에서 여러 층의 홍산문화에는 여러 개의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나온 청동기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청동기 중에, 저 쪽 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 중에 저 홍산문화 중에는 상청문화 하청문화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있는데, 그 중에 발굴된 청동기로 조사를 해보면 가장 빠른 것과 가장 빠른 걸로 제외를 하고 중간 것을 놓고 봐도 BC24세기 때 것이 나옵니다. BC24세기 때 청동기가 출토가 된다는 거죠. 중국에서 저 쪽 지역을 본격적으로 조사한지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아마 조사하면 할수록 그 연대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조사한 바로도 저 홍산문화 중에 BC24세기에 청동기가 출토된다라는 걸 갖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이야기한 BC24세기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하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홍산 문화는 분명히 중국문화하고 다른 우리 민족의 문화이고, 우리 민족의 문화다라고 우리가 인식을 한다면 우리가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 지역에서 출토된 그런 유물들은 중국 문명하고는 완전히 다른 문명들이죠.

고조선의 유물-고인돌과 청동 비파형 동검

우리나라를 갖다가 고인돌 왕국이라고 하죠? 저는 고인돌 여기저기 그려놓은 뭐 고인돌이 전북 고창에도 있고 많은데, 가서 고인돌 설명해놓은 설명문 중에 고인돌을 갖다 고조선의 유물이다라고 설명해 놓은 건 거의 못 봤습니다. 여러분은 본적 있어요?

고조선 시대같이 문헌이 부족한 시대는 유물로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는데 그 유물 중에서 대표적인 표지유물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것을 고조선 같은 경우,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바로 고인돌이고 또 하나는 청동 비파형 동검 이런 것들인데, 보면은 고인돌은 이것은 중국 요령성에 있는 고인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강화도에 있는 고인돌이고, 북방식으로 되어 있죠? 북방식은 우리가 탁자식이라고 부르고, 이걸 보면 저 남쪽 흑산도에 있는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의 용도가 뭐냐 하면 백%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 아니면 무덤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때에 고인돌이라는 형태의 무덤을 사용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저 만주지역에서부터 저 흑산도까지 퍼져 있었다라는 걸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무덤이 뭡니까? 무덤은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매장하는 곳이지만, 무덤의 의미는 뭐냐 하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문입니다. 사람은 다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덤은 사람은 죽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으로 가는 거지요.

그래서 같은 형식의 무덤을 사용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같은 내세관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 만주 북부에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과 그리고 한반도에 만든 사람들과 저 남방의 흑산도에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같은 문화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죠.

이 고인돌은 상동반도에서도 한두 점 정도가 발굴이 됐고, 발견이 됐고, 아마 연구가 진전되면 그 쪽 지역에서는 더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의 그 하하족이라고 불리 우는 중국민족이 사는 지역에서는 단 한 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도 묘한 거죠. 확연히 고인돌을 가지고 그 경계가 그어지는 겁니다.

또 하나는 비파형 동검을 볼 수가 있는데, 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식 동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흔히 보면 우리나라의 모든 문명은 중국에서 들어왔다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가 항상 그런 식으로 기술을 하고 있구요, 청동기도 마찬가지이고 철기도 마찬가지고 다 중국에서 왔을 것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다 교과서가 서술이 됩니다.

그래서 얼마 전 주몽이라는 드라마에도 보니까 뭐 한사군은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쪽에서는 그 철기문화를 입수하기 위해서 애쓰는 그런 장면들이 나오죠. 그것도 다 청동기나 철기나 다 중국문명이 우리보다 우수했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냐?

이걸 보면 청동검은 주석과 아연의 합금인데 우리나라 청동검에는 아연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연은 보통 섭씨 7-8백도면 날라갑니다. 그런데 청동검을 만들려면 섭씨1200도씨 이상 가열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청동기의 아연을 어떻게 섞느냐 하는 거는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기술이죠.

우리나라 청동기는 아연이 2-30%씩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 청동기는 아연이 거의 함유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 당시 중국에서는 이 아연을 합금할 기술이 없었던 거죠. 다시 말씀드리면 고조선의 청동 기술이 중국의 청동 기술보다 뛰어 났다는 겁니다.

우리는 막연한 고정관념 속에서 중국 것이 항상 발전했고, 우리는 중국에서 모든 문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라는 생각 속에서 청동기 저것도 중국에서 왔다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 청동기의 비파형 동검의 분포지역을 보면 우리가 또 재밌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이 비파형 동검은 또 중국 지역에서는 전혀 또 나오지 않습니다. 이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역을 보면, 바로 동이족의 세력범위, 다시 말씀드리면 고조선의 세력범위하고 아주 정확하게 일치한다라고 볼 수 있지요. 출토한 지역보다 약간 실제 광역은 조금 더 넓게 잡아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저희가 내몽고 지역에 있는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인데 여러분도 뭐 내몽고 지역에까지 저 비파형 동검이 있다라는 거를 잘 들어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저희는 답사를 다니면서 요즘에 내몽고나 이 쪽 중국 지역에 청동검을 찾아서 답사를 몇 번 다녔는데, 이 중국 박물관도 적봉시 박물관이 됐든 오환기란 곳이 있는데 박물관이 됐든,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대단히 신경 많이 씁니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왔다 그러면 신경 많이 썼는데, 요즘은 일본은 별로 신경 안 쓰고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대단히 신경 많이 쓰죠.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먼저 물어보는 게 역사공부 하느냐? 이걸 먼저 물어 봅니다.

저희 집안 가훈 중에 하나가 거짓말 하지 말라 인데 근데 저 지역 가서는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좀 해야 됩니다. 그러면 지금 보신 이쪽 거는 내몽고 지역의 비파형 동검과 거푸집이죠. 거푸집은 비파형 동검을 만드는 틀인데 저 틀이 나왔다 하는 것은 고조선의 중심 지역 중에 하나라는 걸 뜻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포항제철이 있는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이 있는 광양지역이나 이렇게 철 생산의 중심지라는 뜻이죠.

저희가 가서 이런 거 사진 하나 찍으려면 상당히 고도의 작전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다 처음에 저희가 적봉 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 분명히 비파형 동검이 있다는 걸 알고 갔는데 싹 없어졌습니다. 어디 갔느냐 물어보면 중앙에서 다 가져갔다 북경에서 다 가져갔다 그렇게 답하죠. 그렇게 답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우리나 다 거짓말이라는 건 서로 압니다.

그러다 몇 달 후에 어느 날 갑자기 가보면 있습니다. 있으면 절대 사진을 못 찍게 하죠. 보통 요즘은 전 세계 박물관들이 사진 대게 찍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데 왜 못 찍게 하느냐 하면 그 때서야 중앙에서 특별지시가 내려와서 이거는 못 찍게 명령이 내려왔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라는 느낌이 중앙에서부터 아래말단까지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라는 느낌을 답사 다니면서 여러 차례 봤습니다.

중국에서는 마치 비파형 동검이 내몽골 지역 같은데서 출토됐다? 있다라고 말하는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상당히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하겠어요? 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된 지역은 중국 역사가 아닌 겁니다. 곧 고조선 역사이고 우리 역사이지 중국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지역을 현재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거죠.

우리가 항상 중국 청동 제조 기술이 더 우수하다라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여깄는 다뉴세문경을 보면 다뉴세문경에 선과 선 사이가 0.3미리입니다. 지금의 컴퓨터로도 저거를 못 그립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 그림 잘 그리는 제도 잘하는 분이 그려도 저걸 못 그립니다.

그런데 청동기는 그려서 만드는 게 아니라 아까 거푸집을 봤듯이 거푸집을 만들고 거푸집에 주물을 떠서 그 청동 물을 넣은 다음에 위로 덮고 나중에 굳은 다음에 떼서 만드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저 정교한 저 선을 보세요. 얼마나 정교한가? 저 정교한 청동기는 지금도 지금 기술로도 만들 수 없습니다. 아주 세계 청동기 제조사상 불가사의 중에 하나죠. 근데 중국 청동기는 덩치는 큰 게 많아도 이렇게 세밀한 거는 그 근처에 오는 것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중국 여러 박물관이라는 박물관은 많이 가본 사람 중에 하나인데 청동기 가서 암만 봐도 저렇게 정교한 청동기는 없습니다.

당시 고조선의 청동 제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였다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청동기에서 철기 발전해서 철기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 국사 교과서에는 마치 철기는 위만이 갖고 온 것처럼 이렇게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청동기 기술이 그렇게 발달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중국보다 이 고조선 청동 기술이 발달했다라는 게 뜻하는 거는 마찬가지로 그 청동기에서 나오는 철기 제조 기술도 아주 발달했다라고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모든 것이 하여간 발전된 건 전부다 중국에서 왔다 왔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역사서를 쓰는 겁니다.

그럼 위만에 관해서 나와 있는 고대의 많은 기록 중에 위만이 철기를 갖고 왔다라는 기록 전혀 없습니다. 기록에 있다 그러면 고조선에 원래 철기 기술이 없었는데 위만이 가져 왔다라는 고대 기록이 또 남아 있다라면 할 말 없죠. 그건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 들여야 되는데, 그런 기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위만이 철기를 가져온 것처럼 그렇게 서술하는 그 자체가 상당히 큰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죠.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사

또 하나 문제점이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나라의 주류학설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평안도 일대에 걸쳐있는 작은 소국입니다. 근데 작은 소국인데 기존 학설에 따르면 작은 소국과 중국 한나라가 왜 전쟁을 하느냐?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전쟁의 시작이 고조선이 한나라로 중국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에 조공 바치러 가는 여러 나라를 못 가게 막았다 해서 전쟁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그러면 한나라에 가는 걸 막을려면 평안도에 있어가지고 무슨 재주로 저 만주나 북방에 있는 민족이나 나라들이 가는 거를 평안남도에 있어가지고 무슨 재주로 막겠습니까? 이 전제 자체가 틀린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고조선에 관한 중국의 사료들을 보면 예를 들어 그런 사료가 있습니다. 뭐 예군濊君 남려南閭가 28만 명을 들어서 항복했다 하는 건데 예는 예라는 나라를 뜻하고 군은 군장을 뜻하는 거죠. 고조선은 예라는 나라를 속국으로 거느린 황제 국가라는 걸 뜻합니다.

중국이 사료들을 면밀히 보면 고조선의 번국들이 있었다라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고조선의 산하에 여러 번국들, 제후국들을 거느리는 거느렸던 황제국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중에 하나 예라는 나라만 해도 그 28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는 거죠.

중국하고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한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전쟁이 2년 가까이 막 끌지 않습니까? 근데 이 전쟁의 기록들을 면밀히 살펴볼 때, 우리가 상당히 의문스러운 구절들이 많습니다.

해방되지 못한 역사관-한사군

뭐 첫째는 여기서 저하고 연배 비슷한 분들은 아마 초등학교 때 한사군이란 것에 대해서 달달 외웠을 겁니다. 시험에도 나왔죠. 한사군 이름 다 외워야 되고 낙랑이다 뭐 진번이다 임번, 현도다 이름 다 외워야 되고 위치까지도 낙랑은 뭐 평안도 일대 해가지고 위치까지 다 외워야 됐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한사군이 뭡니까?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 지역에다가 설치했다는 중국의 식민통치기관 아닙니까? 그 이름과 위치를 우리가 초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 됐다? 해방된 나라에서 달달 외워야 됐다? 이거는 마치 우리 초등학교 중학생들에게 일본 총독 이름 외우게 하는 거하고 똑같습니다. 조선의 주둔했던 조선 총독부의 1대 총독은 누구냐? 2대 총독은 누구냐? 이게 시험문제 나온 거 하고 똑같은 겁니다.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죠.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사건이 무려 2200여 년 전에 있었던 사실인데, 2200여 년 전의 식민통치기관의 이름과 위치를 왜 외워야 했을까? 여기서 우리가 나라는 해방됐지만 역사관에서는 전혀 해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왔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이 그렇게 진행됐느냐? 사마천이 살아 있을 때 목도한 겁니다. 이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은, 근데 이 전쟁 기록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전쟁에 관한경과를 죽 보면은 결론적으로는 중국이 이겼다는 거죠. 이겼는데 이기고 돌아왔으니까 한무제가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을 표창해야 되지 않습니까? 장군들을 심사해서 상을 줘야 되는데, 어떡하냐면 순체荀剔란 장군과 양복楊僕이란 장군이 있습니다. 순체란 장군은 오니까 목을 베서 기시棄市합니다. 기시가 뭡니까? 그냥 목 베는 것도 아니고 저자거리에서 목을 베서 그냥 구경거리로 만드는 거죠.

또 한 사령관 양복이라는 사령관은 사형 선고를 내렸다가 막대한 돈을 바치니까 신분은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귀족에서 강등시키고 목숨은 막대한 돈을 받고 살려줍니다. 그 외에 위산이라는 인물과 공선소라는 인물은 이미 사형 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마천이 뭐라고 부기附記하냐면 조선과 전쟁에 나섰던 인물 중에는 아무도 제후로 봉함을 받은 사람이 없다. 원래 장군으로 중국에서 나가서 전쟁에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면 장군에서 후, 제후로 봉함을 받는 게 중국의 포상의 관례입니다.

근데 고조선과의 전쟁은 이기고 돌아 왔는데 아무도 제후로 봉함을 받기는커녕 다 사형을 당합니다. 이상하죠? 전 세계 전쟁 역사상 이런 아무런 우여 곡절이 있을지라도 전쟁은 결과가 중요한 거 아닙니까? 결과가 이게 좋으면 이겼으면 다 상을 주는 건데, 이겼다고 써놓고 오히려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다 사형시킵니다. 이건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사마천의 사기에 다 나와 있는 겁니다.

그 반면에 고조선이 무너지는 게 전쟁에서 져서 무너졌다기보다는 고조선 지배층이 분열하면서 자체 붕괴하는 겁니다. 자체 붕괴한 결과, 고조선에서 한나라에 항복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전부다 제후로 봉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후로 봉함을 받는 지역이 여기에 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이 쪽 지역이죠.

발해를 중심으로 저 산동반도에서부터 위쪽에 이르는 이런 지역들. 이건 점점으로 연결한 건데 실제로 뭐 이 사람들이 제후로 봉함을 받은 받긴 받았지만 봉함을 받은 지역은 따지면 호수로 따지면 불과 수백 호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지역들을 받는 겁니다.

근데 어쨌든 위치가 왜 고조선에서 한참 떨어진 이 쪽 지역을 봉지로 줬을까? 이거를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것과 연결해서 중요한 것이 한사군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그림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달달 외워야 됐던 위치의 말하자면 근본 사료라고 볼 수 있는데, 이병도 씨가 쓴 국사대관에 나오는 한사군을 나타내는 겁니다.

보면 평양지역에 낙랑군이 있죠? 다른 모든 삼군도 한반도 내에 걸쳐서 있는 걸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낙랑군입니다. 왜냐면 낙랑군은 한사군의 중심지입니다. 한사군의.

한사군의 중심 - 낙랑군의 위치

그래서 과연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 하는 점은 우리가 고조선사를 바라 볼 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가 됩니다. 지금까지는 전부다 낙랑군은 바로 평양 일대에 있었다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낙랑군의 위치를 실제 어디냐라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사기태강지리지에 나옵니다.

판서를 잠깐 하겠습니다.

이게 사기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낙랑군 수성현遂城縣에는 갈석산碣石山이 있는데 장성소기長城所起, 장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수성현과 바로 이 갈석산이 어딘가를 찾으면은 낙랑군의 위치가 어딘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수성현과 특히 갈석산이 어디냐? 여기만 찾아보면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가 있는 거죠.

근데 이병도씨가 뭐라 했냐면 이 수성은 황해도에 보면 수안이라고 있습니다. 아마 수성은 수안일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거가 뭐냐? 근거는 숫자 하나가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이 쓴 책을 보면 맹랑하지만 이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그 글에다가 맹랑하지만 나는 황해도 수성을 수안에 비정하고 싶다, 맹랑하면 하지 말아야죠.

근거가 이거 딱 하나입니다. 그럼 중국 여러 지명중에 숫자 같은 지명 찾으면 백개 이상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갈석산이 있어야죠. 갈석산이 수안에 있습니까? 없으니까 그냥 근처에 산 하나 갖다가 저걸 갈석산이라고 했을 것이다라고 해서 비극인 건 그렇게 돼서 이 수성현이 실제로 황해도 수안이 됐다는 거죠. 그래서 보면 장성소기 여기에 장성이 시작된다.

장성이 뭡니까? 만리장성이죠? 그러다보니까 중국의 만리장성이 이 안까지 그림을 보시면 중국의 각 박물관들 한번 다녀보세요. 다녀보시면 중국 박물관들에서 만리장성을 저 한반도 안 황해도까지 끌어다 놨습니다. 그 이론 제공을 우리가 한 겁니다.

그럼 실제로 우리가 한 번 수성현과 갈석산을 한 번 찾아보자 라는 건데 지금 하북성 창려현이란데 가보면 갈석산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입구에 신악갈석이라고 써 있죠? 갈석산이 있습니다. 가보면. 저희가 작년에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왔습니다. 꼭대기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창려현 전경이 나오는데, 위에서 보면 요새지죠. 사방이 산으로 거의 둘러쌓여져 있고, 저 끝에 쯤 보이는 데가 바로 발해입니다.

그리고 저 지역이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와 있는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시작된다 하는 이야기는 현재 창려현 갈석산하고 모든 부분이 다 맞아떨어집니다. 저 근처에 바로 산해관을 비롯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저기에서 끝나고 끝나는 지역이니까 시작하는 지역이죠. 장성이 저기에서 시작되고 또 하나는 이 수나라 시대, 수양제가 있었던 수나라 시대에 관한 역사책이 수서 아닙니까? 이 수서에 보면 수성현이 바로 현재의 이름으로 현재의 이름인 창려현이다 라는 구절이 수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 사기태강지리지나 수서나 이런 모든 사료를, 중국 사료를 종합해 보고 그리고 실제로 현재의 갈석산에 저 하북성 창려현에 가보면 현재 갈석산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언제 시간되시면 북경에서 하루 코스면 하루나 넉넉히 잡아서 이틀 코스면 하루 코스면 충분히 다녀올 지역입니다. 저길 구경하고 나서 밤중에 북경까지 들어갔으니까 일찍 출발하면 하루면 갈 수 있는 지역인데, 분명히 중국 고대 기록을 보면 낙랑군 지역은 현재의 하북성 창려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걸 갖다가 지금까지도 현재까지도 평양지역에 있다. 얼마 전까지 고구려 연구재단 홈페이지에까지 이 낙랑군을 평양지역에 있는 걸로 그려놨었습니다.

낙랑군이 여기 보시는 대로 갈석산을 중심으로 한 저 지역에 있느냐 아니면 평양지역에 있느냐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낙랑군이 지금 우리가 사료에서 보고 실제 답사로 확인한 하북성 지역에 있느냐? 있다라고 하면 이 의미는 뭐냐 하면 한 나라는 고조선 영토를 거의 차지하지 못한 겁니다.

차지했다라고 해봤자 약간 저 일대 조금 차지해서 거기에다가 형식적으로 낙랑군이다 하는 거를 만들었다는 거죠. 그리고 광대한 고조선의 옛 지역들은 우리 선조들이 그냥 계속 다스리고 살고 했다는 겁니다. 그 지역에서 부여가 나오고 고구려가 나오고 옥저가 나오고 동여가 나오고 다 나오는 거죠.

한사군은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그냥 사군을 설치했다 이렇게만 딱 나옵니다. 그리고 이름자체도 안 나옵니다. 저 보세요. 사마천이 살아 있을 때 목격한 전쟁인데,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까지 당했던 사람이 그 옛날 일까지 다 답사 다녀가면서 기록을 했던 사람이 자기가 살아 있을 때 목도한 전쟁의 결과로 한사군을 설치했으면 왜 그걸 이름을 기록을 안했겠느냐?

그리고 어떤 기록에는 중국 어떤 기록에는 2군으로 나오고 어떤 기록에는 또 3군으로 나옵니다. 아주 혼재가 되어 있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말해주는 게 뭐냐? 결국은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이라는 거는 외형상 중국이 이겼다라는 형태를 취했지만 사실은 이긴 것이 아니라 그냥 고조선은 상부체제가 자체 붕괴한 거고 붕괴한데서 전쟁이 끝났고 중국은 한나라는 고조선 영역을 거의 차지하지 못했다라는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결론이 또 나오는 이유가 뭐냐 하면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하지 않습니까? 침공할 때 보면 좌군 12군, 우군 12군을 나눠가지고 진격로를 너는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와라 하는 진격로를 다 제시를 해줍니다. 그 진격로에 이 사군 이름이 거의 다 나옵니다. 낙랑군도 나오고 뭐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근데 여기에서 한 번 보세요.

낙랑이 당시 수양제가 공격하려고 했던 평양성 지역이, 고구려 수도가 평양성 아닙니까? 근데 기존의 견해대로 낙랑이 평양에 있다 그러면 수양제가 처음에 24군을 출발시키는 데가 북경 북부의 탁현이라는 곳인데 거기에서 출발시키면서 너는 낙랑을 거쳐가지고 낙랑으로 와라 이 얘기니까 앞뒤가 안 맞는 거죠.

그 얘기가 가능하려면 수양제가 공수부대가 있으면 가능합니다. 공중에 떠가지고 공수부대가 내려오면 되는데 그렇지 않는 한 이게 앞뒤 말이 안 맞는 겁니다. 그럼 이런 여러 많은 실증적인 사료들이 있으면 우리가 기존에 믿어 왔던 한사군의 위치 지정이 대단히 잘못 됐구나라는 거를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실제로 고구려 동천왕 같은 경우를 보면 동천왕이 막 서안평을 공격하지 않습니까? 고구려 동천왕의 싸우고 하는 지역들이 저 서쪽으로 위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저 동천왕이 서쪽으로 진격을 해가지고 위나라하고 막 싸움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다 이 당시에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나 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는 거죠.

정리를 하면 한사군이라는 거는 중국에서 고대 기록은 그 당시 전쟁의 기록은 우리가 중국 사료 밖에 남아 있는 게 없으니까 고조선 측에서 쓴 사료는 없기 때문에 중국 사료를 가지고 우리가 해석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사료를 해석을 하고 그 다음에 중국 사료에 나와 있는 사료와 그 지역들을 답사를 다녀보면 결국은 한사군이라는 것은 저 난하 근처 산해관 일대의 고조선 서쪽 끝자락 일부를 차지했으면 그 쪽 극히 일부를 차지해서 형식적으로 한사군이란 걸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고조선의 옛 주요한 옛 지역들은 한나라가 전혀 차지하지 못했다.

못했으니까 한무제가 이기고 돌아온 장수들을 다 사형시키지 않겠습니까? 그 땅을 전부다 차지해가지고 고조선을 다 차지해가지고 돌아왔다라면 이기고 돌아온 장수를 갖다가 사형시키는 세계 전쟁 역사상 그런 임금은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준왕의 도주로

또 하나의 우리가 고조선사를 볼 때에 또 하나의 문제가 고조선의 준왕의 도주로인데 우리는 흔히 고조선이 멸망할 때 수도가 평양이었다라고 생각하고 고조선의 준왕이 평양에서 위만이 들어오니까 도주해가지고 남쪽으로 가서 마한, 마한의 왕이 되었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준왕은 마한의 왕이고, 마한은 곧 백제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데, 여기에서도 우리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면 최치원의 글을 보면 마한은 곧 고구려다 하는 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금 대다수의 한국 학계 이런 쪽에서는 마한은 백제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데, 최치원은 천 몇 백 년 전의 인물인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걸 갖다가 이병도씨가 그건 최치원이 잘못본거다 하니까 다 잘못 본 걸로 이렇게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보면 역사공부하기 아주 편한 나라입니다. 자기 생각해가지고 자기 생각하고 안 맞는 기록이 나오면 기록이 잘못된 거니까 공부하기 아주 편하죠. 여러분도 시험 칠 때 자기가 모르면 답이 틀렸다라고 하면 혼자 다 백점 맞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런가?

준왕의 도주로를 기록한 중국의 기록들을 보면 이 주입해走入海라고 쓰고 있습니다. 달려서 바다로 들어갔다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해로로 도주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세요. 평양 일대다 하면 평양에서 호남지역으로 충청도나 호남지역으로 도주한다? 적이 막 쳐들어오는데 도주한다 치면 뭘로 도주하겠어요? 말 타고 그냥 도주하든지 걸어서 뛰어가는 게 평양 지역에서는 훨씬 유리한 겁니다. 배를 부리고 배에 싣고 이렇게 할 때에는 상당히 앞에 높은 산이나 뭐가 가로 막혀 있어가지고 뱃길로 돌아가는 게 훨씬 빨라야 되는 거죠.

근데 뭐 대동강 이쪽 유역들은 그렇게 하기가 배를 부려가지고 배를 통해서 도주하는 시간보다는 그냥 육로로 뛰는 게 훨씬 빠른 지역이죠. 그렇게 따지면 주입해를 통해서 바다로 달려들어서 도망갔다라고 하는 거는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저 요동반도 한번 여러분들 비행기타고 심양이나 장천이나 이런 쪽 가실 때 요동반도 지날 때 아래를 한번 내려다보세요. 상당히 험합니다.

이 요동반도를 육로로 도주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니까 요동반도는 해로로 도주하는 게 상당히 나은 게 되는 거죠.

그 중국 고대 기록 중에 왕검성, 왕검성에는 패수浿水가 흐르는데, 그 패수는 동남쪽으로 흘러서 동쪽 바다로 빠진다. 예를 들면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의 위치를 우리가 추적하는 겁니다. 추적하는 단서 중에 하나가 중국 고대 지리서 중에 왕검성에 패수가 흐르는데 패수는 동남쪽으로 흘러서 동쪽 바다로 빠진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동강은 어느 바다로 빠져요? 서쪽 바다로 빠지죠? 서해로 빠지죠. 그리고 동남쪽으로 흐르지 않고 서쪽으로 흐르죠? 서남쪽으로. 근데 이것도 안 맞다 하니까 이병도씨가 이거는 서쪽을 동쪽으로 잘못 쓴 거다. 그래야 평양하고 위치가 맞죠. 고조선 왕검성의 위치가 평양이라고 하면 그건 이병도씨 말이 맞는 거죠. 옛날 중국의 역도원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도 그 양반도 그냥 왕검성이 지금의 평양성이다 생각하니까 안 맞는 거죠. 안 맞으니까 이거는 동쪽이라고 쓴 거는 서쪽이라고 바꿔야 된다. 역도원酈道元이라는 사람도 공부하기 참 편한 머리를 가진 분이죠. 그렇게 되면 왕검성의 위치를 우리가 평양이라고 봤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아까 우리가 고인돌을 봤지 않습니까? 만주지역에도 광범위하게 많은 고인돌이 퍼져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역사가 한반도내에 국한된 시간보다는 오히려 그 넓은 대륙과 해양에 걸쳐있었던 때가 훨씬 더 깁니다.

한반도가 우리 역사의 주 무대가 된 게 몇 년 입니까? 불과 천 몇 백 년 되지 않습니다. 그 훨씬 그것보다 몇 배 더 되는 기간 동안은 우리가 저 만주대륙, 내몽고 일대를 다 포함한 만주대륙이 우리의 역사무대였고, 일본열도까지 포함한 대해양이 우리 역사의 무대였다는 겁니다. 그 때는 무궁화 삼천리 반도강산 아름답긴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애국가 그 구절은 고쳐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제가 내몽고 갔을 때 내몽골 사막의 오아시스인데, 아까 제가 내몽골 지역에서 그 고조선의 동검인 청동검이 많이 출토된다고 그랬죠? 그 당시 다 우리 선조들이 다녔던 역사의 무대입니다.

실제 하나 저 보면 내몽골 적봉 위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시라무렌 강이라고 있습니다. 그 시라무렌 강을 갖다가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면 염수鹽水라고 나오는데, 그 시라무렌 강이 염수다 하면 사람들이 안 믿었습니다.

실제로 옛날에 독립운동 하던 분들은 역사 공부를 아주 깊이 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뭐 환단고기나 이런 책들도 사실은 대종교 계통에서 많이 쓴 책들인데 대종교에서는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모시면서 역사를 통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그런 세력인데 가보면 시라무렌 강 위쪽에 가보면 실제 염수 짠 물이 있습니다. 가보고 나서야 비로서 얼마 전에 KBS 역사스페셜 팀에서 가보고 실제로 있으니까 이게 맞다라고 했는데 그럼 옛날에 저렇게 광대한 고조선의 영토가 이렇게 광대했다라고 하면 과거에는 이 그림과 이 고조선을 평안도 일대에 걸쳐있던 작은 나라였다라고 배워 왔던 것과 한번 비교해보세요.

이거는 고조선의 서쪽 국경을 난하라고 한 거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러시아에서 고조선을 연구한 유엠푸친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 유엠푸친이라는 러시아 학자가 고조선의 서쪽 국경은 난하다라고 해가지고 저 양반이 만들어 놓은걸 갖다가 저희가 차용을 한 거죠.

대륙의 지배자 기마민족 고조선

그러면 고조선이 그 당시에 어떻게 저렇게 광대한 지역을 영위할 수 있었는가? 물론 국경이라는 게 지금같이 세관이 있어가지고 뭐 여권 검사하고 그런 개념은 아니죠.

그것이 왜 가능하나면 우리 민족은 기본적으로 기마민족입니다. 기본적으로 기마민족에 나중에 농경성이 가미가 되는 건데, 이 기마민족이란 거는 지금 여러분 말로 이동하는 것과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 어떤 게 빠르겠어요?

고속도로로 가면 자동차가 빠릅니다. 만주지역 가보신분 아시겠지만, 요 근래 와서 도로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불과 십년 전만 해도 말로 가는 게 차로 가는 것보다 훨씬 빠릅니다. 말은 웬만한 지역 다 가지 않습니까? 물 어느 정도 있어도 가고, 사막도 가고, 웬만한 초원지대 다 가지 않습니까? 자동차는 정확하게 자동차 길이 닦여져 있지 않으면 못가죠. 말의 이동 속도가 상당히 빠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고조선에서 부여가 나오고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오고. 보면은 고구려의 벽화를 보세요. 다 기마무사들이죠. 이 기마무사들이기 때문에 광대한 영토를 영유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에게 그러면 그 당시 유목민, 기마민족의 습성이나 이런 게 뭐가 살아남아 있느냐? 뭐가 남아 있을 거 같습니까? 삼겹살 좋아하는 이게 다 기마민족의 풍습입니다.

전 세계에서 삼겹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한국이죠. 유럽에서까지 다 수입해가지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삼겹살 아주 먹기 곤란한 음식입니다. 연기 피어오르고 골치 아프고 한번 먹을라면 냄새 배고 막 이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삼겹살을 그렇게 구워먹고, 만주 집안시集安市 같은데 가보면 집안에는 고구려 불고기라는 게 있습니다. 풍로에다가 불고기 갖다 화덕 놓고 그 위에 소고기 불고기 해먹는 건데, 그게 보다 원형에 보다 가깝게 남아 있는 거죠.

삼겹살 보다 가깝게 남아 있는 게 만주 집안에 가보면 있는 그런 불고기인데, 저는 우리 민족이 현재 해방 이후에 많은 발전을 했지 않습니까? 많은 발전을 한 이유가 우리 민족 내부에 내재해 있는 이 대륙성과 해양성 이 기마민족성이 발휘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오대양 육대주를 막 누비면서 우리 아버님 세대 형님 세대들이 그렇게 살아왔지 않습니까?

그거 하나로서 그 기마정신 하나가지고 죽 발전을 한 건데, 그 이전에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 갇혀 있을 때 온갖 많은 불행한 일들이 생깁니다. 물론 고려나 조선이나 조선 같은 나라는 제가 조선에 관련되어 있는 책들 여러 권 썼는데, 조선은 다시 말하면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실현됐던 그런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철학자들이 나와서 정치하던 뭐 그러한 나라인데, 그 자체 내부에 들어가면 나름대로 정교한 여러 시스템들이 있습니다만 큰 우리가 오늘의 주제에 맞춘 큰 틀에서 비추어 볼 때는 우리 민족에 내재해 있는 유목성, 기마성은 거의 다 없어지고 농경성만 남아있던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마민족성과 성공한 한국 자본주의

우리 민족 내부의 농경성만 살아 있으면 어떻게 돼냐 하면 결국 내면에는 기마민족성이 잠재해 있습니다. 이게 결국 내부에서 싸우는 걸로 표출이 되면, 우리 민족 자체로 보면 큰 불행한 결과가 초래가 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도 내부에서 싸우다 보니까 내부가 남북으로 갈리고 동서로 갈려서 싸우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은 밖으로 나가야 되는데, 총 들고 나가자는 얘기가 아니죠. 우리 민족의 한국 자본주의라는 거는 한국이 세계 십대 뭐 교역국으로까지 발전 했는데 한국 자본주의야말로 세계에 수출할만한 발달사입니다.

제가 올 여름에 유럽 지역을 가봤는데, 영국의 대영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 가보면 전부다 유물이라고 있는게 전부다 약탈해온겁니다. 약탈박물관이에요 이거는.

대영박물관이면 영국 물건이 있어야 되고, 프랑스 박물관이면 프랑스 물건이 있어야지요. 있는 거는 전부 이집트 거, 소아시아 거, 전부다 가져온 겁니다.

그러다가 제가 그 박물관을 나와서 보니까 한국산 차들이 왔다 갔다 하고 유럽 사람들이 한국산 핸드폰 초콜릿폰이라고 불리는 그게 유럽에서 인기가 좋은데 그거 들고 서로 통화를 합니다. 그 때 제가 뭘 느꼈냐면 인류사의 20세기는 제국주의의 시대입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했던, 힘으로 지배해서 노예로 삼고, 식민지로 삼았던 그런 제국의 시대인데, 그런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가 되었던 나라 중에서 그 식민지 본국에 최첨단 제품을 수출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거는 그래서 한국의 서양의 자본주의 발달사라고 하는 것은 거의 다 해외 식민지를 가지고 많은 무수의 민족들에게 제3세계 민족들에게 고통을 줘가면서 살찌운 거지만 우리나라가 발전하기까지에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통 받는 다른 민족들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죠?

우리나라가 발전을 성취한 이거는 세계에 수출할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성취해서 동남아시아가 됐던 아프리카가 됐던 이런 나라가 발전을 했을 경우, 이거는 새로운 한국사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거죠.

동이족대연합도-중국의 패권주의 경계

근데 그런 견지에서 제가 한 번 제가 지도를 만들어 본 게 있습니다. 이름해서 동이족대연합도라고 붙여 봤는데, 저 지도에 보시면 저 파란색으로 죽 그려진데, 바다에서부터 파란색으로 죽 그려진 데는 중국의 영토입니다.

그런데 제가 또 파란색을 하나 또 그었지 않습니까? 이건 뭐냐면 원래 중국의 영토는 이 부분입니다. 나머지 땅들은 중국의 영토라고 보기에 곤란한 그런 지역들입니다. 중국이 이 쪽 지역에는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이 쪽 지역에는 서북공정을 진행하고 이쪽 지역에는 서남공정을 진행해서 여러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는 여러 지역들을 다 중국 영토로 편입을 시키고 있는데 왜 그러한 일들을 하느냐?

중국을 흔히 56개 민족이 합쳐져서 된 다민족 국가다 이런 말을 하죠. 그거는 중국의 공식설명이고, 56개 민족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 중국의 한족이 차지하고 있는 인구 비율은 91%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5개 민족이 차지하고 있는 인구비율이 0.9%입니다. 그 반면에 영토를 가지고 따지면 이 0.9%에 지나지 않는 이 소수민족의 원래 영토가 63%입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인들, 한족들이 가지고 있는 영토는 37%밖에 안 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36.5%되는데, 그러다보니까 중국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이 소수민족이 다 떨어져 나가면 91% 달하는 인구가 현재 영토의 37%에서 살아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죠.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딴 지역들에 대해서 군사적인 점령을 전혀 풀 생각이 없는 겁니다.

중국 인민 해방군이 티벳트를 점령한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1950년 10월 달입니다. 1950년 시월 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바로 이 한반도내에서 치열하게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이 전쟁에 전부다 미국도 발목 잡히고 다 발목 잡혀있는 동안 중국군의 일부가 티벳트에 들어가서 점령을 한 겁니다. 그 쪽 말로는 해방 시켰다고 그러죠.

그런 용어를 제가 두 번 봤습니다. 한번은 일본이 1930년대에 만주지역을 들어가면서 만주 민중을 해방시킨다 하고 들어가서 만주국 수립했죠. 마찬가지로 지금 중국군이 티벳트 점령하면서 티벳트 지역을 해방시켰다 이렇게 말합니다. 티벳트와 중국은 같은 나라일 수가 전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인종적으로 보나 종교로 보나 모든 것이 다 틀린 나라이죠. 그냥 군사적으로 점령한 겁니다.

우리가 1910년도에 나라를 일본한테 뺏겼지 않습니까? 그리고 1919년에 뭐가 일어납니까? 3.1운동이 일어나죠? 마찬가지로 1950년에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가 1959년에 티벳트 민족 해방운동이 일어납니다. 이때 달라이 라마 쪽 자료에 따르면 6백만 인구 중에 2백만 가까이가 죽었다는 겁니다. 이 때 너무 많은 사람들 죽었기 때문에 티벳트에서는 그 당시 조금 젊다 하는 사람은 거의 다 죽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티벳트가 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데, 현재는 저 티벳트 지역에는 오십만 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핵실험을 하면 항상 실험하는 장소는 저 티벳트 그 옆에 있는 청해성, 옛날 다 티벳트 지역이죠. 그 쪽에서 항상 핵실험을 합니다.

우리가 중국이 설마 우리나라를 북한 지역을 차지하겠느냐? 물론 중국에 두 흐름이 있습니다. 중국이 앞의 미래를 현재와 같은 패권국가로 계속 갈 거냐? 아니면 체제민주화로 갈 거냐 하는 양쪽 흐름이 있는데 중국이 물론 민주화가 되면 우리가 별 걱정할건 없습니다. 민주화 체제가 수립이 되고 각 소수 민족들이 자기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체제가 되면 더 이상 위협이 안 되겠죠. 현재로서는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상당히 경계를 해야 되는 겁니다.

뭐 독도 문제 하나 가지고는 질이나 차원에서 아주 틀린 문제이죠. 그럴 때 현재 우리나라 현 상태로 이렇게 가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하겠다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가 아까 단일민족론이다 순수혈통론이다 하는 이게 다 사대주의에서 나왔다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도 우리나라 우파는 친미사대주의이고 좌파는 친중 친북 사대주의 아닙니까? 이렇게 가다가 과연 저 그림을 한 번 보세요. 중국이 저렇게 거대한데 우리 한반도가 저 조그만 지경에 처해가지고 중국이 현재 상태로 발전해 나가면 우리 한국이 나중에 독립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 이 문제도 우리가 사실 우려를 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빨간색으로 그린 거는 바로 중국에서 동이라고 불렸던 동이족이라고 불렸던 민족들을 묶은 겁니다. 묶어보면 저기에는 우리 민족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 만주족, 말갈족이 들어가고 몽골족이 들어가죠. 그래서 이 세 현재에 남아 있는 거란족도 일부 있고 하는데, 현재는 남아있는 형체를 찾아보긴 어렵고, 현재 남아 있는 이 쪽 민족들만 쭉 묶어 보면 이렇게 큰 그림이 됩니다.

그리고 저 속에서 중국에 지금 현재 점령당해 있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나중에 독립해 나간다라고 했을 경우에는 상당히 거의 중국하고 땅덩어리로 따져도 별로 뒤지지 않는 넓은 영토가 되는 거죠.

이걸 우리는 마찬가지로 뭐 군사적으로 이렇게 하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자본이나 기술이나 이런 것과 저쪽 몽골이나 만주 지역이 갖고 있는 어떤 영토나 지하자원이나 이런 것하고 같이 연합하면 서로가 상승하는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꿈으로 보이십니까?

21세기 한민족이 나아가야 할 미래

지금 당장은 꿈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그 꿈은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미래는 현실로 전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지금 우리 사회가 아주 혼란에 빠져 있는 게 국가 아젠다Agenda를 상실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해방 이후에 우리의 과제가 있다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제가 있었고, 또 하나는 정치민주화를 이룩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 두 과제를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 현재로서는 달성했지 않습니까?

달성한 지금에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갈 거냐? 달성한 다음에 우리가 뭘 지향해야 할 거냐? 바로 이것이 새로운 아젠다가 나와야 될 시점인데, 이 아젠다를 미래로 가지 않고 자꾸 과거로 가다 보니까 우리끼리 싸우기만 하고 아무것도 이룬 거는 없고, 서로 간에 마음에 상처만 주고 이렇게 되었던 거죠.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발전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왜냐 우리나라는 또 이거를 자력으로 다 달성한 겁니다. 누가 갖다 준 경제발전이 아니고, 누가 갖다 준 민주화가 아니고 우리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우리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룩했지 않습니까? 그럼 이 달성한 제3세계 여러 국가들이 부러워하고 있는 이 한국의 성취를 제가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제3세계에 나눠주면서 이 성과를 같이 공유를 하면서 발전을 해나가면서 우리 옛 고대사의 강역들을 우리 옛 선조들의 정신에 따라서 동이족을 죽 묶는 연합하는 그런 형태로 나가는 것이 우리 민족이 21세기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겠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정리 : 김영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