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1] 삼성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대전, 2009]



<삼성기 해제
(解題)>



1. 삼성기는 어떤 책인가?


『삼성기』는 한민족 상고시대의 원형문화와 인류 시원문화의 핵심이 가장 압축적으로 정리된 상고역사서의 결정체이다. 인류 문화의 창세기 국가인 환국과 동방 한민족사의 출발점인 배달, 단군의 고조선시대로부터 중고사인 북부여와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한(韓) 민족사의 국통 맥을 신교문화[三神觀]의 주체적 시각에서 가장 정확하게 잡아주는 현존 사서이다.


외래문화와 반민족사가들의 민족혼 말살로 한민족 정통 사서들이 자취를 감춘 오늘의 현실에서, 본서는 한민족 고대의 비사(秘史)를 처음 접하고 이를 배우고자 열망하는 독자들에게 동방 한민족사의 전체흐름을 개관하고 인류 뿌리 문화의 안목을 틔워주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 조선 초기에는 10여 종의 동방 한민족 도가사서(道家史書)들이 민간에 널리 실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조 때 이르러 유교 문화를 중심으로 성리학 사관과 이념을 구축하기 위하여 그들의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 전통사서와 도서들을 모조리 수거해 갔다.


이후 도가사서들이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단지 저자와 서적의 제목만이 기록에 남아 전하게 되었다. 삼성기도 그 저자와 서책의 이름만이 세조실록에 남아 전해져 왔다.


그런 가운데 삼성기가 한국의 역사 무대 위에 다시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깨어 있는 역사의식의 혼을 품은 몇몇 지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환단고기의 편자인 계연수는 구한말 당시, 자신의 집안에 비전(秘傳)되어온 안함로의 삼성기와 태천 진사 백관묵이 소장한 원동중의 삼성기를 『삼성기전』으로 엮어냈다.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안함로가 찬술한 삼성기를 삼성기 상(上), 고려시대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의 삼성기를 삼성기 하(下)로 묶어 삼성기전으로 편찬한 것이다.


특히 원동중의 삼성기에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역사서인 『고기(古記)』와 『밀기(密記)』등의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저자인 안함로는 불교 도승이지만 삼성기에는 서두에서 보듯이 유·불·선 삼교합일의 언어를 구사하며 창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화지신(獨化之神)', '장생구시(長生久視)', 겸성지인(兼聖之仁)'과 같은 술어는 유·불·선이 회통한 문화의식이 돋보이는 언어들이다. 삼성기는 단순히 불교 중심의 사관으로 쓴 일연의 삼국유사나 유학자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유·불·선에 갇힌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 문화의 근원인 신교의 보편 문화의식으로 동방 시원문화의 역사를 삼신문화의 원형 그대로 그려주는 사서이다.



2. 저자 안함로와 원동중


안함로(579~640)


속성은 김씨이고 일명은 안함(安含) 또는 안홍(安弘)이다. 이찬인 시부의 손자이며, 신라 진평왕 때의 도승으로 신라 십성 중 한 사람이다.


각훈의 해동고승전에는, '승려 혜숙과 함께 중국으로 가다 풍랑을 만나 되돌아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듬해 진평왕 2년(601)에는 왕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수나라로 들어가 황제를 만나고 대흥성사(大興聖寺)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열반에 이르는 십승의 비법[十勝秘法]과 심오한 경전의 뜻[玄義]과 진문(眞文 부처나 보살이 설교한 문구)을 공부하고 605년 서역 승려들과 함께 귀국하였는데 서역의 승려가 신라에 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의 일로 기록되어 있어 조금의 연차를 보인다.


일찍이 세속 너머의 세계에 뜻을 두었던 그는 사물에 통달하였고, 지혜가 밝아 번뇌의 속세를 벗어나, 가고 머무름을 뜻대로 하였다. 떠한 물 위를 걷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신력을 통한 도승으로 시원신교의 선맥(仙脈)을 계승한 인물이었다. 그의 이적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오고 있다.


선덕왕 9년(640), 만선도량에서 62세로 입적할 때도 신이한 이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법사의 입적 후, 그 달에 중국에서 돌아오던 한 사신이 그를 만났는데 푸른 바다 위에서 자리를 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서쪽을 향해 기쁜 모습으로 떠났다고 전한다.


저서로는 삼성기와 참서 『동도성립기』가 있는데, 참서는 지금 전하지 않는다.


원동중(생몰연대 미상)


원동중에 대한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다만 세조실록에 세조가 팔도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유시한 목록에 그 이름이 전한다. 이유립은 원동중을 고려 때 인물로 비정하였다.



3. 주요 구성과 내용


삼성기는 인류 시원국가 환국으로부터 한민족사의 첫출발인 신시배달, 그리고 이를 계승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넘어,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고주몽 성제의 고구려 건국에 이르기까지 동방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 기틀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국통의 문제이다. 삼성기 상은 내용이 아주 간략하고 단순하면서도 국통 맥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비해 삼성기 하편은 환국과 신시배달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밝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편에서는 환국의 7대 환인과 12환국의 이름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또 신시배달 시대로 넘어가서는 동방의 역사 개척 과정과 문명 개창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을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말미의 신시역대기에는 신시배달의 18대 환웅과 재위연도, 배달의 역년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삼성기 상편의 첫 문장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고 하여, 한민족 국통의 시원뿌리가 환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삼성기 하편에도 '석유환국'이라고 하여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고기(古記)'의 기록과 같이 한국의 역사가 실존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삼성기 상편의 '오환건국'과 삼성기 하편의 '석유환국(昔有桓國)', 각각의 네 글자에는 인류 시원 문화사의 태동이 환국에서 비롯됐음을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편에서는 이 환국이 12개의 분국체제로 하나의 합중국을 이루고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안함의 삼성기 상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동방 문화사의 진실은 '입도신시(立都神市), 국칭배달(國稱倍達)'이라는 역사적 기술이다. 동방 한민족사에서 최초의 나라 이름이 배달이며, 그 수도가 신시였음을 삼성기 상에서 처음으로 밝혀주고 있다.


하편에서는 '인류지조왈(人類之祖曰) 나반(那般)'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여 인류의 시조되시는 최초의 부모인 '나반과 아만'의 역사를 기술하여 인류의 창세 시원사에 대해 밝혀주고 있다.


삼성기 상편에서의 역사 인식이 인류의 시원사 환국에서 시작하는데 비해 삼성기 하편은 인류의 창세사로부터 역사 인식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기 하편에서는 인류의 창세 시원사와 함께 세계문명의 뿌리이자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의 역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밝히고 있다. 환국 말기에 동방 한민족의 환웅 천왕이 환국의 대통을 이어 받아 신시 배달의 역사를 열어 나간다.


그리고 오늘의 중국인의 뿌리인 서방 한족의 창세 신화의 반고가 환족의 지손(支孫)이며 역사의 실존 인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한중 역사의 태동 과정과 양자의 정치문화, 혈통적 관계에 역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삼성기 하편에서는 동방문명과 한민족사의 실제 출발점인 신시배달의 역사를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상편에서는 치우천왕이 청구를 널리 개척했다고만 약술하고 있으나, 원동중의 삼성기에서는 탁록 벌판에서 벌어진 동방 배달 천자 치우천왕과 서방 한족의 역사시조인 황제 헌원의 대전쟁을 실감나게 기술하고 있다.


한·중 역사의 가장 뜨거운 논쟁의 하나가 바로 이 치우천왕과 황제 헌원의 '지존(至尊) 대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탁록대전이 동방 한민족의 서방 개척 역사의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삼성기 하편에서는 배달국 대부흥의 역사의 중심인물인 치우천왕을 한민족사뿐만 아니라 5천년 동북아 역사에서 가장 비중 있는 인물로 다루고 있다.


당시 주변 제후국의 주요인물인 대요, 창힐, 헌원은 모두 동방배달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이맥의 태백일사를 보면 '헌원은 동방의 대선인인 자부 선생을 찾아뵙고 삼황내문경을 받아갔으며 창힐, 공공, 대요 등의 무리들도 와서 배워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치우천왕의 국사이신 자부 선생이 동방의 문화와 철학을 그들에게 전수함으로써 중국 한족 문화의 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무쪼록 삼성기 상·하 두 편을 하나로 통합해서 읽을 수 있는 성숙의 경계에 서서 인류와 한민족의 시원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신교사관(神敎史觀)의 안목을 틔울 수 있기 바란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이 동방 한민족의 역사책일 수는 없다. 수많은 역사기록들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필요도 없다. 그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국사(國史)와 너무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해서 무조건 불신하려는 태도야말로 자신이 동방 한민족의 후예임을 애써 지우려는 잘못된 역사관의 해독(害毒)이다.


그동안 동방 한민족의 시원사는, 사대주의에 물든 반도사관과 주체성을 상실한 식민사관에 물들고 왜곡되어 본래의 참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든, 이제 한민족의 참된 시원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니만큼 이를 애써 부정하지 않기 바란다.


성성하고 바른 역사의식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대도진리를 향해 가는 지름길이란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