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聖紀全 下篇
- 元董仲 撰 -
人類之祖를 曰那般이시니 初與阿曼으로 相遇之處를 曰阿耳斯它라. 夢得天神之敎하사 而自成婚禮하시니 則九桓之族이 皆其後也라.
인류의 시조는 나반(아버지)이시다. 처음에 아만(어머니)과 서로 만나신 곳은 아이사타였다. 꿈에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고 두 분께서 스스로 혼례를 올리시니, 구환의 족속은 모두 이 두 분의 후손이다.
昔有桓國하니 衆이 富且庶焉이라. 初에 桓仁께서 居于天山하사 得道長生하시며 擧身無病하시며 代天宣化하시며 使人無兵하시며 人皆作力하야 自無飢寒케 하시니라. 傳하여 赫胥桓仁 古是利桓仁 朱于襄桓仁 釋提任桓仁 邱乙利桓仁하여 至智爲利桓仁하니 或曰檀仁이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백성들은 풍요롭고 날로 번창하였다. 처음에 환인천제께서 천산(파내류산, 시베리아 중앙고원)에 거하셨다. 환인천제께서는 조화의 도를 깨우쳐 오래 사셨으며, 온몸에는 병이 없으셨으며, 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천하를 다스리고 백성들을 가르치셨으며,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없게 하셨다. 또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해 열심히 일하게 하여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자가 없게 하셨다. (2세)혁서 환인 (3세)고시리 환인 (4세)주우양 환인 (5세)석제임 환인 (6세)구을리 환인을 거쳐 (7세)지위리환인에 까지 전해졌다. 환인은 단인이라고도 부른다.
古記에 云호대 <波奈留之山下에 有桓仁氏之國하니 天海以東之地오 亦稱波奈留之國이라. 其地廣이 南北五萬里오 東西二萬餘里니 摠言桓國이오 分言則 卑離國 養雲國 寇莫汗國 句茶川國 一羣國 虞婁國(一云 畢那國) 客賢汗國 句牟額國 賣句餘國(一云 稷臼多國) 斯納阿國 鮮禾卑國(一稱 豕韋國 或云 通古斯國) 須密爾國이니 合十二國也라> 하였다. 天海는 今曰北海라. 傳七世하여 歷年이 三千三百一年이오 或은 云호대 六萬三千一百八十二年이라 하니 未知孰是라.
고기에 <파내류산 아래에 환인씨의 나라가 있었으니, 천해의 동쪽 지역이며, 달리 파내류국이라고도 하였다. 이 나라의 넓이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였는데, 그 광활한 지역 전체를 환국이라 불렀다. 이 나라는 또한 여러 국가로 나누어 불렀는데, (1)비리국, (2)양운국, (3)구막한국, (4)구다천국, (5)일군국, (6)우루국(또는 필나국), (7)객현한국, (8)구모액국, (9)매구여국(또는 직구다국), (10)사납아국, (11)선비국(시위국 혹은 통고사국), (12)수밀이국이라 하였으니, 모두 열 두 나라였다.>고 하였다. 천해는 지금의 북해이다. 환국은 7대를 전하였다. 역년은 모두 합하여 3,301년 또는 63,182년이라 하니 어느 것이 맞는 것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다.
桓國之末에 安巴堅께서 下視三危太白하시고 皆可以弘益人間이라 하실새 誰可使之오 하시니 五加가 僉曰 庶子에 有桓雄하시니 勇兼仁智하시고 嘗有意於易世以弘益人間하시니 可遣太白而理之라 하야늘 乃授天符印三種하시고 仍勅하시니 曰 如今에 人物이 業已造完矣니 君은 勿惜厥勞하고 率衆三千而往하여 開天立敎하고 在世理化하여 爲萬世子孫之洪範也어다 하시니라.
환국의 말기에 안파견(‘아버지’의 뜻, 환국 7대 지위리 환인)께서 삼위산(감숙성 돈황현 돈황석굴 부근)과 태백산(백두산)을 내려다보시고 ‘두 곳 모두 가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로다.’하시고 ‘누구를 보내야 하겠는가?’ 하시거늘, 오가의 대신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서자에 계신 환웅께서 용맹하면서도 인자하시고 지혜로우시며, 또 일찍부터 세상을 개혁하여 홍익인간케 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셨으니, 그분을 동방의 태백(백두산)으로 보내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마침내 천제께서 천부와 인 세 가지를 환웅에게 주시며 명하시기를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인간과 만물의 질서가 갖추어졌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열어 삼신상제님의 진리로써 가르침과 다스림을 펴고 삼신상제님의 진리의 이상을 세상에 실현함으로써 만세의 자손에게 참사람의 큰 표본이 될지어다.’하셨다.
時에 有盤固者하되 好奇術하며 欲分道而往하여 請하니 乃許之하시니라. 遂積財寶하고 率十干十二支之神將과 與共工 有巢 有苗 有燧로 偕至三危山拉林洞窟하여 而立爲君하여 謂之諸畎이오 是謂盤固可汗也니라.
그 때에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는 반고라는 사람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니 천제께서 허락하셨다. 마침내 반고는 많은 재물과 보배를 싣고, 10간과 12지의 신장(10간과 12지의 술법을 맡은 사람)과 공공(연장을 만드는 사람), 유소(집 짓는 사람), 유묘(농사짓는 사람), 유수(불을 피우는 사람) 등을 거느리고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이들을 제견이라 하며, 그를 반고가한이라 부른다.
於是에 桓雄께서 率衆三千하사 降于太白山頂 神壇樹下하시니 謂之神市오 是謂桓雄天王也시니라. 將風伯 雨師 雲師하시고 而主穀 主命 主刑 主病 主善惡하시며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하시고 在世理化하시고 弘益人間하시니라.
그 때에 환웅께서는 무리 삼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부르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천왕께서는 풍백, 우사, 운사를 비롯하여 곡식과 왕명과 형벌과 질병과 선악을 주관하는 5가의 대신들을 거느리시고 인간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관하셨다. 삼신일체의 진리로 세상을 다스리시니 인간세상이 널리 이롭게 되었다.
時에 有一熊一虎하여 同隣而居러니 嘗祈于神壇樹하여 願化爲神戒之氓이어늘 雄께서 聞之曰可敎也라 하시고 乃以呪術로 換骨移神하실새 先以神遺 靜解로 靈하시니 其艾一炷와 蒜二十枚라. 戒之曰 爾輩食之하고 不見日光百日하면 便得人形하리라 하시니라. 熊虎二族이 皆得而食之하야 忌三七日하니 熊은 能耐飢寒하야 遵戒而得儀容하고 虎則放慢不能忌하야 而不得善業하니 是二性之不相若也라. 熊女者가 無與爲歸故로 每於壇樹下에 呪願有孕이어늘 乃假化爲桓하사 而使與之爲婚케 하시니 懷孕生子에 有帳하시니라.
그 때에 한 웅족과 호족이 서로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신단수에 와서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따르는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라고 빌었다. 환웅천왕께서 그 소식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가히 가르칠만하다.’ 하시며 주문의 도술로써 그들의 몸과 정신을 개조하여 새 사람이 되도록 하실 때, 먼저 삼신상제님의 조화로 심신을 정화시켜 야만성을 깨끗하게 벗겨내는 신령한 쑥 한 줌과 달래 20매를 주시며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이것을 먹으면서 백일동안 출입을 끊고 수행에 정진하면 마침내 우리 환족과 같은 인간의 참모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니라.’고 하셨다. 웅호 두 족속은 이것을 먹으며 21일을 삼가하여 수행에 매진하더니, 웅족은 능히 굶주림과 추위를 견뎌내며 계율을 준수하여 마침내 참사람의 거동과 용모를 얻었으나, 호족은 방종하고 태만하여 계율을 지키지 못하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는 두 족속의 성품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웅족의 여인들은 시집갈 곳이 없어 매일 신단수 아래에 와서 ‘아이 갖기를 소원하옵니다.’고 빌었다. 이에 환웅천왕께서는 이들을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귀화) 주시어 환족의 남자들로 하여금 그녀들과 결혼하게 하셨는데, 아이를 낳으면 광명의 환족으로 입적시켜 주셨다.
桓雄天王께서 肇自開天으로 生民施化하실새 演天經하시며 講神誥하사 大訓于衆하시니라. 自是以後로 蚩尤天王께서 闢土地하시며 採銅鐵하사 鍊兵興産하시니 時에 九桓이 皆以三神으로 爲一源之祖하야 主蘇塗하며 主管境하며 主責禍하며 與衆議一歸로 爲和白하며 竝智生雙修하야 爲居佺하니 自是로 九桓이 悉統于三韓管境之天帝子하니 乃號曰 檀君王儉이시라.
환웅천왕께서 처음으로 동방 배달민족의 새 역사시대를 여시어 삼신상제님의 진리로써 가르침을 펴시고 다스림을 베푸실 때, 천부경을 내어 가르치시고 삼일신고를 강설하사 백성들을 크게 깨우치시니라. 이후에 치우천왕께서 영토를 개척하시고, 구리와 철을 채취하시어 병기를 발전시키시고 생산을 크게 일으키시니, 이 때 9환족이 모두 삼신상제님을 궁극의 조상으로 섬겨 성소를 정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국경을 정하여 서로 침범치 않도록 하였으며, 잘못하고 죄 지은 것에 대하여 반드시 그 이유를 규명하고 정황을 따져 죄를 물었으며, 대중의 뜻을 하나로 통일하는 만장일치 회의제도를 시행하고, 지혜(性과 理)와 생명(命)을 함께 닦아 인간완성의 도에 머뭄에 힘썼다. 그 후로 9환족이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통치하신 삼신상제님의 아드님에 의해 통일이 되니, 이분을 일컬어 단군왕검이라 불렀다.
密記에 云호대 <桓國之末에 有難治之强族하야 患之러니 桓雄께서 乃以三神設敎하시고 以佺戒爲業하시며 而聚衆作誓하야 有勸懲善惡之法하시니 自是로 密有剪除之志하시니라. 時에 族號不一하야 俗尙漸岐하니 原住者는 爲虎오 新住者는 爲熊이라. 虎性은 嗜貪殘忍하야 專事掠奪하고 熊性은 愚愎自恃하야 不肯和調하니 雖居同穴이나 久益疎遠하야 未嘗假貸하며 不通婚嫁하며 事每多不服하야 咸未有一其途也러라. 至是하야 熊女君이 聞 桓雄 有神德하고 乃率衆往見하야 曰願賜一穴廛하야 一爲神戒之盟이니이다 하야늘 雄께서 乃許之하시고 使之奠接하사 生子有産케 하시고 虎는 終不能悛하야 放之四海하시니 桓族之興이 始此焉하니라>고 하였다.
밀기(삼성밀기)에서 말하기를, <환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포한 족속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마침내 동방개척의 문을 여시고,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푸시며 인간완성의 계율로써 사람의 마땅한 바를 삼으시어 백성들에게 이것을 배우고 지킬 것을 맹세케 하시고, 권징선악의 법을 만드시니, 이로부터 난폭함을 뿌리 뽑아 잘 다스리려는 뜻을 심중에 두셨다. 이 때에는 부족의 칭호가 한 가지가 아니어서(이미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서) 각 족속의 풍속이 점차 다르게 되었다. 당시 본래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은 호족이었고, 새로 이주해 온 족속은 웅족이었다. 호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웅족은 성품이 어리석고 괴팍하고 고집이 세어 남과 기꺼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두 족속이 비록 같은 지역에 함께 거주하였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 소원해져만 갔다. 마침내 서로 물건을 빌려주지도 않았고 서로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두 족속의 의견이 어긋나 모든 면에서 그 추구하는 바의 이상이 달라 함께 한 길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웅족의 여왕이 환웅천왕께서 신령한 덕이 있으시다는 소문을 듣고는 족속을 거느리고 찾아와 ‘소원하오니, 한 터전을 주시어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지키는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청하였다. 환웅천왕께서 마침내 허락하시고 정착할 곳을 내려주시고 자식을 낳아 살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호족은 끝내 타고난 강포한 성품을 고치지 못하므로 아주 먼 곳으로 추방을 하시니, 배달겨레의 흥함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였다.
後에 有葛古桓雄하시어 與炎農之國으로 劃定彊界하시고 又數傳하야 而有慈烏支桓雄하시니 神勇冠絶하사 以銅頭鐵額으로 能作大霧하시며 造九治而採鑛鑄鐵로 作兵하시니 天下大畏之에 世號爲蚩尤天王이라 하니 蚩尤는 俗言에 雷雨大作하야 山河改換之義也라. 蚩尤天王께서 見炎農之衰하시고 遂抱雄圖하사 屢起天兵於西하시고 又自索度로 進兵하사 據有淮岱之間하시고 及軒侯之立也에 直赴涿鹿之野하사 擒軒轅而臣之하시고 後遣吳將軍하사 西擊高辛有功하시니라.
후에 갈고환웅(10대 환웅천왕)께서는 염제 신농씨의 나라와 국경을 정하셨다. 그 후 몇 대를 내려와 자오지환웅(14대 환웅천왕)께서 계셨다. 자오지환웅께서는 신이한 용맹이 절대적으로 뛰어난 분이셨다. 철과 구리로 투구를 만들어 쓰셨고, 도술로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셨다. 구치라는 채광기를 만들어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여 병장기를 만드시니 온 천하가 크게 외경하였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분을 ‘치우천왕’이라 일컬었는데, 치우란 말은 속언으로 ‘뇌우를 크게 일으켜 산하를 뒤바꾼다.’는 뜻이다. 치우천왕께서 염제 신농씨의 나라가 날로 쇠약해져 감을 지켜보시고는 웅대한 포부를 품으시고 여러 번 서쪽으로 용감무쌍한 군대를 일으키셨다. 그리하여 색도(하북성 조광현)에서 군사를 진군시켜 회수와 태산 사이를 점령하셨다. 제후였던 황제헌원이 반역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천왕께서는 즉시 탁록(하북성 탁록현)의 광야로 진격하여 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으셨다. 그 뒤에는 오장군을 파견하여 서쪽의 고신지역을 점령하시어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크게 안정케 하셨다.
時에 天下鼎峙하야 涿之北에 有大撓하고 東有倉頡하고 西有軒轅하야 自相以兵으로 欲專其勝而未也러라. 初에 軒轅이 稍後起於蚩尤하야 每戰不利라 欲依大撓而未得하고 又依倉頡而不得하니 二國은 皆蚩尤之徒也라 大撓는 嘗學干支之術하고 倉頡은 受符圖之文하니 當時諸侯가 罔不臣事者는 亦以此也라. 司馬遷 史記에 曰 <諸侯咸來賓從이로대 而蚩尤가 最爲暴하야 天下莫能伐이오 軒轅이 攝政에 蚩尤有兄弟八十一人하야 竝獸身人語하며 銅頭鐵額하며 食沙하며 造五丘杖刀戟太弩하야 威振天下라 하고 蚩尤는 古天子之號也라>하니라.
이 때 서방 한(漢)족의 형세는 솥발과 같이 셋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탁록의 북쪽에는 대요가 있었고, 동쪽에는 창힐이 있었으며, 서쪽에는 헌원이 있었다. 모두가 무력으로 승패를 겨루어 패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헌원이 치우천왕에 반역하였으나, 거병이 천왕에 비해 늦었으므로 싸울 때마다 불리하였다. 그래서 대요에게 의지하고자 하였으나 대요가 도와주질 않았고, 창힐 또한 도와주질 않았다. 이는 이들 두 나라가 모두 치우천왕의 추종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대요는 일찍이 10간12지 60갑자의 술법을 배워 갔고, 창힐은 부도문자를 전수받아 갔다. 당시 모든 제후들이 신하로써 우리 배달국을 섬기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이는 우리 배달국으로부터 이와 같이 문명을 배워갔기 때문이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천하의 모든 제후들이 황제헌원에게 와서 복종하였으나, 치우는 가장 강포하여 천하에서 능히 이를 정벌치 못하였다. 황제헌원이 천하를 다스릴 때, 치우는 형제가 81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짐승의 몸뚱아리에 사람의 말을 하는 괴수들이었다. 쇠머리에 구리이마를 하였으며 모래를 먹었다. 오구장과 도(칼)와 극(창)과 태노를 만들어 썼으므로 천하에 그 위세를 크게 떨쳤다. 치우는 옛날 천자의 호칭이다.>라고 말하였다.
神 市 歷 代 記
倍達은 桓雄께서 定有天下之號也라. 其所都는 曰神市니 後徙靑邱國하야 傳十八世하니 歷은 一千五百六十五年이라.
배달은 환웅천왕께서 천하를 크게 평정하시고 정하신 나라이름이다. 그 도읍을 신시라 하였다. 후에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겼다. 18대를 전하였고, 역년은 1,565년이다.
一世 曰 桓雄天皇 一云居發桓 在位九十四年 壽一百二十歲
二世 曰 居佛理桓雄 在位八十六年 壽一百二歲
三世 曰 右耶古桓雄 在位九十九年 壽一百三十五歲
四世 曰 慕士羅桓雄 在位一百七年 壽一百二十九歲
五世 曰 太虞儀桓雄 在位九十三年 壽一百一十五歲
六世 曰 多儀發桓雄 在位九十八年 壽一百十歲
七世 曰 居連桓雄 在位八十一年 壽一百四十歲
八世 曰 安夫連桓雄 在位七十三年 壽九十四歲
九世 曰 養雲桓雄 在位九十六年 壽一百三十九歲
十世 曰 葛古桓雄 又曰瀆盧韓 在位一百年 壽一百二十五歲
十一世 曰 居耶發桓雄 在位九十二年 壽一百四十九歲
十二世 曰 州武愼桓雄 在位一百五年 壽一百二十三歲
十三世 曰 斯瓦羅桓雄 在位六十七年 壽一百歲
十四世 曰 慈烏支桓雄 世稱蚩尤天王 徙都靑邱國 在位一百九年 壽一百五十一歲
十五世 曰 蚩額特桓雄 在位八十九年 壽一百一十八歲
十六世 曰 祝多利桓雄 在位五十六年 壽九十九歲
十七世 曰 赫多世桓雄 在位七十二年 壽九十七歲
十八世 曰 居弗檀桓雄 或云檀雄 在位四十八年 壽八十二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