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聖紀全 上篇         

                          -  安含老  撰 -


吾桓建國이 最古라

우리 환족(桓族)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


有一神께서 在斯白力之天하사 爲獨化之神하시고 光明照宇宙하시고 權化生萬物하시니라. 長生久視하시며 恒得決樂하시며 乘遊至氣하시니 妙契自然하사 無形而見하시며 無爲而作하시며 無言而行하시니라.

천지의 조화신께서 사백력의 하늘에 계시며, 홀로 조화를 지어내는 삼신[元神]이 되셨다. 광명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무한한 권능과 무궁한 조화로 만물을 낳으셨다. 영원하시며, 항상 장쾌한 즐거움을 이루시며, 지극한 조화의 기운을 타고 노시니, 그 신묘하심이 스스로 그러함(自然)으로 드러나 형체 없이 나타내시며, 함이 없이 만물을 지으시며, 말씀 없이 행하신다.


日降童女童男八百於黑水白山之地하시니

어느 날, 젊은 남 여 800명을 흑수(흑룡강)와 백산(백두산)의 사이의 땅에 내려 보내셨다.


於是에 桓因께서 亦以監群으로 居于天界하사 掊石發火하시고 始敎熱食하시니 謂之桓國이오 是謂天帝桓因氏이시니 亦稱安巴堅也시니라. 傳七世나 年代는 不可考也니라.

그 때에 환인께서 모든 백성의 우두머리(감군)로서 천계(사백력)에 계시며, 돌을 쳐 불을 만드시고, 처음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것을 가르치시니 이 나라를 ‘환국(환하게 밝은 나라, 광명제국)’이라고 하고, 이 분을 ‘천제 환인씨’ 또는 ‘안파견(아버지)’이라 불렀다. 환국은 7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가히 헤아릴 수가 없다.


後에 桓雄氏繼興하사 奉天神之詔하시고 降于白山黑水之間하사 鑿子井女井於天坪하시고 劃井地於靑邱하시며 持天符印하사 主五事하시고 在世理化하사 弘益人間하시며 立都神市하시고 國稱培達하시니라.

뒤에 환웅천황께서 환인천제를 계승하여 크게 흥하셨다. 삼신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의 길을 따라 내려오셨다. 천평(삼신상제님께서 환웅천황에게 천명으로 주신 땅 - 백두산과 그 주위)에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파 사람을 모여 살게 하시고, 청구에 정지를 나누어 농토를 구획하셨다. 천부와 인을 지니시어 오사를 주관하시고, 삼신의 이치로 세상을 교화하고 다스리시어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셨다.  


擇三七日하여 祭天神하시며 忌愼外物하시며 閉門自修하시며 呪願有功하시며 服藥成仙하시며 劃卦知來하시며 執象運神하시니라. 命群靈諸哲하사 爲輔하시며 納熊氏女하사 爲后하시고 定婚嫁之禮하사 以獸皮로 爲幣하시며 耕種有畜하시며 置市交易하시니 九域이 貢賦하며 鳥獸率舞라. 後人이 奉之爲地上最高之神하여 世祀不絶하니라.

3․7일(21일)을 택하여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시고, 모든 일과 생명에 삼가고 조심하셨으며, 문을 닫고 수도하셨으며, 서원을 세우고 주문을 읽어 큰 공덕을 이루셨으며, 약을 복용하여 신선이 되셨으며, 괘를 그어 미래의 일을 아셨으며, 천지조화의 비밀을 깨쳐 신명을 부리셨다. 여러 신령한 인물들과 명철한 모든 인재를 모아 신하로 삼으시고, 웅족의 여자 우두머리를 맞아들여 왕후로 삼으시고, 결혼예법을 정하여 짐승 가죽으로 폐백을 삼으셨다. 밭 갈고 씨 뿌리고 가축을 기르게 하시고, 시장을 열어 교역케 하시니 모든 지역에서 공물과 세금을 바치고, 뭇 새와 짐승들 까지 모여 춤추며 따랐다. 후세 사람들이 지상 최고의 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神市之季에 有蚩尤天王하사 恢拓靑邱하시고 傳十八世하니 歷一千五百六十五年하니라.

배달국 신시시대의 말기에 ‘치우천왕’이 계셨는데 청구의 영토를 넓게 개척하셨다. 이 환웅시대는 18대를 전하였고, 그 역년이 1,565년이었다. 


後에 神人王儉께서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하시니 其至神之德과 兼聖之仁이 乃能承詔繼天而建極하사 巍蕩惟烈이어늘 九桓之民이 咸悅誠服하야 推爲天帝化神而帝之하니 是爲檀君王儉이시니라. 復神市舊規하시고 設都阿斯達하시고 開國號朝鮮하시니라.

후에 신인 왕검께서 불함산(하얼빈 완달산)의 박달나무가 우거지 곳에 내려 오셨다. 왕검께서는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자애로움을 겸하셨다. 마침내 선대(환인천제, 환웅천황)와 삼신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이어 인륜의 푯대를 세우고 나라를 여시니, 그 공덕이 우뚝 솟아 찬란히 빛났다. 이에 구환의 백성들이 다함께 기뻐하고 진심으로 복종하여 환인천제의 화신으로 추대하여 임금으로 섬기니, 이 분이 바로 ‘단군왕검’이시다. 배달국 신시의 옛 법도를 되살리셨다. 도읍을 아사달로 정하시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셨다.


檀君께서 端拱無爲하사 坐定世界하시며 玄妙得道하사 接化群生하시며 命彭虞하사 闢土地하시며 成造로 起宮室하시며 高矢로 主種稼하시며 臣智로 造書契하시며 奇省으로 設醫藥하시며 那乙로 管版籍하시며 羲로 典卦筮하시며 尤로 作兵馬하시고 納菲西岬河伯女하사 爲后하시고 治蠶케하시니 淳厖之治가 熙洽四表러라.

단군성조께서는 두 손을 맞잡고 단정히 앉아 무위로써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세계를 안정케 하셨다. 현묘한 도를 깨우쳐 백성들을 가르치고 다스리셨다. 팽우에게는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에게는 집을 짓게 하시고, 고시에게는 농사를 주관하게 하시고, 신지에게는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에게는 호적을 관장케 하시고, 희에게는 팔괘로써 점치는 일을 맡게 하시고, 우에게는 병사와 군마를 관장케 하셨다. 또 비서갑(하얼빈)에 사는 하백의 따님을 왕후로 맞아들이시어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시니, 그 순박하고 두터운 다스림에 온 세상이 태평하게 되었다. 


丙辰周考時에 改國號하사 爲大夫餘하시고 自白岳으로 又徙於藏唐京하시고 仍設八條하시고 讀書習射로 爲課하시며 祭天으로 爲敎하시며 田蠶是務하시며 山澤無禁하시며 罪不及孥하시며 與民共議하시며 協力成治하시니 男有常職하며 女有好逑하며 家皆蓄積하며 山無盜賊하며 野不見飢하며 絃歌溢域하니라. 檀君王儉께서 自戊辰統國으로 傳四十七世하여 歷二千九十六年하니라.

병진년(BC 425년), 주나라 고왕(희외, 31대 왕, BC 440~425) 때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시고,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길림성 농안․장춘 지역)에서 장당경 아사달(요녕성 개원시)로 옮기시고, 8조의 금법을 정하셨다. 독서와 활쏘기, 문무를 함께 닦음을 일과로 삼게 하셨으며, 삼신상제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으셨다. 농사와 양잠에 힘쓰셨고, 백성들이 산에서 사냥하고 못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셨으며, 죄를 지어도 그 벌이 처자에게는 미치지 않게 하셨으며,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나라를 다스리셨다. 그리하여 남자들에게는 늘 떳떳한 직업이 있었고, 여자들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식량과 재물이 풍부하였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으며,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온 나라에 흘러 넘쳤다. (초대)단군왕검께서 무진년(BC 2333년)에 나라를 통일하심으로부터 47대를 전하니, 2,096년을 누렸다.


壬戌秦始時에 神人大解慕漱께서 起於熊心山하시고 丁未漢惠時에 燕酋衛滿이 竊居西鄙一隅할새 番韓準이 爲戰不敵하야 入海而亡하니 自此로 三韓所率之衆이 殆遷民於漢水之南하고 一時羣雄이 競兵於遼海之東하니라.

至癸酉漢武時에 漢이 移兵하야 滅右渠하니 西鴨綠人高豆莫汗께서 倡義興兵하사 赤稱檀君하시고 乙未漢昭時에 進據夫餘故都하사 稱國東明하시니 是乃新羅故壤也라.

至癸亥春正月하여 高鄒牟께서 亦以天帝之子로 繼北夫餘而興하사 復檀君舊章하시고 詞解慕漱하사 爲太祖하시고 始建元하사 爲多勿하시니 是爲高句麗始組也시니라.

임술년(BC 239년), 진시황(영정, BC 246~206) 때 신인 ‘대해모수’께서 웅심산(길림성 서란현)에서 일어나셨다. 정미년(BC 194년), 한나라 혜제(유영, 2대 황제, BC 195~188) 때 연왕 노관의 부하였던 위만이 번한의 서쪽 변방의 일부(하북성 난하와 천진 사이)를 도적질하여 차지하매 번한의 임금인 준왕, 기준이 맞서 싸웠으나 대적할 수 없자 바다로 들어가니, 번한이 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의 백성들 중 일부가 한수(한강)의 남쪽으로 옮겨가 살았다. 이후로 한 때 군웅들이 요해(요하와 발해)의 동쪽에서 군사를 다투었다.

계유년(BC 108년), 한나라 무제(유철, 7대 황제, BC 141~87) 때에 이르러 한나라가 쳐들어 와 우거(위만의 손자, 위만정권 3대 왕)를 멸망시켰다(BC 108년). 이때에 서압록(길림성 요하) 사람 ‘고두막한’께서 의병을 크게 일으키시고, 자신도 또한 단군이라 일컬으셨다. 을미년(BC 86년), 한나라 소제(유불릉, 8대 황제, BC 87~74) 때에는 부여의 옛 도읍(백악산 아사달, 길림성 농안․장춘 지역)을 점령하시고 나라를 동명이라고 일컬으시니, 이곳은 신라의 옛 땅이다.

그 후 계해년(BC 58년) 겨울 10월에, ‘고추모’께서,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나셨다. 단군왕검의 옛 법도를 다시 일으키시고, 해모수 단군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시고 태조로 받드셨다. 연호를 지어 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