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드 Triad 3.】세 부분의 조화

트리아드는 만물의 완성된 형태이다.

-게라사의 니코마코스 Nichomaschos;100년경

그리스의 신피타고라스 학파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전체에는 시작과 주간과 끝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좋은 것은 모두 셋씩 짝을 지어 온다.

-민간의 속설

□하나, 둘, 통과

우리는 '하나, 둘, 셋'을 셀 때마다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양극성을 뚫고'나아간다. 수를 세는 것은 최초의 창조 신화를 가장 순수한 원형적 용어로 다시 말하는 것이다.

고대의 수학적 철학자들이 1과 2룰 수들의 '부모'로 여겼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3은 최초의 수이자 가장 오래 된 수이다. 그것의 기하학적 표현인 정삼각형은 베시카 피시스의 문을 통해 출현하는 최초의 모양으로, 다자 중 첫 번째 것이다.

3인의 기사, 3총사, 세 현인, 세 가지 소원처럼 3이 들어가는 곳에는 통과, 재탄생, 변화, 성공이 뒤따른다.

그 '부모'를 계승하는 최초의 '수'인 3은 열 개의 수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한히 많은 수 중에서 3은 자기보다 작은 수를 모두 더한 것과 같은 유일한 수이다(3=2+1). 또한, 자기보다 작은 모든 수들과 합한 값이 자기보다 작은 모든 수들과 곱한 값과 같은 유일한 수이기도 하다(1+2+3=1x2x3). 수학적으로, 이 셋은 하나가 되어 다른 수들의 탄생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만세 삼창(이창이나 사창이 아니라)

시작과 중간과 끝, 탄생과 삶과 죽음, 공간의 세 차원(길이, 폭, 높이), 시간(과거, 현재, 미래), 태양의 세 단계(아침, 정오, 저녁)에 맞춘 하루 세 끼 식사, 체스 게임의 세 단계(초반, 중반, 종반), 컴퓨터 용어(인풋, 아웃풋, 스루풋), 신호등의 주기(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동물계와 인간계(도망, 싸움, 요새화), 고대 농경문화의 세 여신 종교는 달의 세 가지 위상(차서 만월이 되었다가 기울어지는)을 농사의 주기(파종기, 추수기, 휴농기), 그리고 여성자신(처녀, 어머니, 할머니)과 동일시하였다. 이것들은 우주에 내재하는 세부분의 일체성에 대해 우리가 사실이라고 느끼는 것의 틀을 만들고 표현하는 방법 중 일부에 불과하다.

각 단계들을 다시 세 부분으로 더 세분하면서 그 과정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나, 둘, 셋" 이나, "ready, set, go(제 위치에, 준비, 시작)"의 세 동작으로 시작하고, 만세를 부를 적에도 "hip, hip, hooray!(만세!)" 또는 "hip, hip, hurrah!"라고 하는데, hurrah는 카자흐족이 전투 때 외치는 함성인 'Hu Ra(낙원)'에서 왔다. 어떤 일을 끝낼 때에도 우리는 세 동작의 구호로 끝내고, 야구에서도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을 외친다. 또, 흔히 "하나, 둘, 셋처럼 쉽다(as easy as one, two, three)"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 대신에 "하나, 둘처럼 쉽다."거나 "하나, 둘, 셋, 넷처럼 쉽다"고 발음해보라.

무엇의 ABC라고 하지. AB나 ABCD라고 하지는 않는다. 전체 과정을 요약해서 이야기할 때 1단계나 2단계 또는 4단계로 나타내는 것은 뭔가 어색해 보인다. 셋보다 작은 것은 불완전해보이고, 셋보다 많은 것은 지나쳐보인다. 이러한 가치들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배워서 몸에 밴 것이 아니라, 내면의 원형에 대한 우리의 민감도에 따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 셋은 포용하는 종합을 통해 일체성과 완전을 선언한다.

3은 또한 복수의 성질(plurality)과 최고를 가리킨다.

어떤 문자를 세 번 반복한 것은 '다자'와 '최대'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이집트인은 가장 어두운 정도를 나타낼 때 '세 배로 어둡다'는 표현을, 알 수 없는 것을 가리킬 때 '세 번 감추어져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영어에서는 올림픽 경기의 세 가지 메달(동, 은, 금)로 상징되는 최상의 표현으로 세 단어 "good, better, best"나 "fine, finer, finest"를 사용한다.

"네가 한 일이 세 배로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도 있고, "삼세 번"이라는 말도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이렇게 우리는 3과 관련된 말을 많이 사용한다. 종교 의식에서 어떤 구절을 세 번 반복하거나 기도나 찬송을 세 번 하는 것은 미신적인 관습으로 침을 세 번 뱉는 것과 같이, 어떤 일이 완전히 실현되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아기돼지 삼 형제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동화나 신화에서는 세 가지 소원, 세 번의 노래, 세 번째 시도, 세 개의 문을 비롯해, 어린이, 동물, 손, 눈, 청혼자, 씨, 아들, 형제, 왕자, 딸, 자매, 공주, 꿈 등이 3이라는 수로 나오고, 머리가 셋인 개나 용, 운명의 세 여신(각자 생명의 실을 잣고, 재고, 자르는), 세 가지 은총이나 분노, 자비 등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의 상징은 델포이의 무녀가 그 위에 앉아 신의 계시를 전하던, 다리가 셋인 청동 제단이었다.

서로 대적하는 것은 분쟁을 중재하는 조정자이자 양극성의 분열을 치유하고, 분리된 부분을 완전한 전체로 변화시키는 제3자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평범한 소원에서부터 신성한 삼위일체에 이르기까지 3이라는 리듬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여기서도 우리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원형적 원리가 수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셋은 하나가 그것을 알 수 있는 조건으로 펼쳐진 것이다.

통일성(unity)이 인식 가능해진 것이다.

-카를 융

□삼각형의 탄생

삼각형은 수렴성이 가장 큰 도형이다. 최소한의 둘레로 최대의 면적을 가두는 원과는 대조적으로, 삼각형은 정반대의 성질을 지닌다. 즉, 둘레의 길이가 같은 도형 가운데 최소의 면적을 가둔다.

트리아드는 그 삼각형을 셋으로 나눈다. 모든 시대를 통해 기하학자들은 삼각형의 종류를 단 세 가지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변과 각이 같은 정삼각형, 두 변이 같은 이등변삼각형, 어떤 변과 각도 같지 않은 부등변삼각형이 그것이다. 또한, 각도도 90˚보다 작은 예각, 직각, 90˚보다 큰 둔각의 세 가지밖에 없다.

두 원의 중심이 서로 밀고 당길 때, 두 원이 서로 교차하여 합의하는 곳 위에 중재자인 제3의 점이 자연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고대의 수학적 철학자들은 트리아드를 분멸, 지혜, 경건, 우정, 평화, 조화, 일치, 결혼 등으로 불렀다.

□경험의 아치

디자인은 자연의 법칙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모세 벤 마이몬 Moses ben Maimin;1135-1204. 유대인 철학자

우주를 디자인할 때, 스스로 지탱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삼각형이 필요하다.

삼각형의 세 변은 서로 반대되는 방향의 응력을 외부의 어떤 도움도 필요 없는 견고하고 안정한 하나의 전체로 변화시킨다.

삼각형은 공간과 에너지와 물질에 힘과 균형과 효율성을 부여한다.

▶자연의 형태에서 발견되는 세 부분의 패턴

일반적으로 생명체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곤충이ㅡ 몸에서부터 머리-몸통-다리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그 각각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과 세 층으로 이루어진 심장 근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똑같은 원리를 보여준다.

□3은 1을 기억한다.

어떤 매듭도 세 개 미만의 교차점을 가질 수 없다. 3은 전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이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뜻의 trinity는 '하나로 통일된 셋'이란 뜻의 'tri-unity'에서 유래했다.

보로메오 고리는 혼자서 또는 둘이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유지되는 전체를 이루고 있다. 그렇게 통합되기 위해서는 세 개의 고리 모두가 서로 동시에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의 고리를 자르면, 전체가 분리된다.

디아드의 원리는 지속적인 전체를 만들지 못하고, 재판관이 없는 변호사처럼 끝없는 갈등의 춤, 해결이 보이지 않는 반대되는 것들만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나 세 번째 머릿단을 추가해 세 잎 모양의 매듭처럼 땋으면, 스스로를 강화하는 안정한 통일성을 지닌 머릿단이 만들어진다.

적절하게 선택한 세 번째 요소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는 관계를 낳는다. 셋은 디아드를 전체성과 통일성으로 분해하여, 모든 것에 스며 있는 모나드 속의 그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다. 수놓아진 우주는 땋아짐을 통해 그 존재를 나타낸다. 네즈퍼스족 인디언과 샤합티안족 인디언의 말에서 3이라는 수는 '하나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서로 대립하는 둘과, 결합시키고 균형을 이루고 중재하고 변화시키는 중립적인 하나로 이루어진 세 측면이 없이는, 지속적인 해결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불가능하다.

또한, 트리아드의 이해를 이용하면 양극화된 두 가지 언어 집단의 유혹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와 문법은 세상을 흑백의 대립과 양자택일적 상황으로 보게 함으로서 우리의 인식을 규정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계곡의 어느 한쪽으로만 내려가게 만든다. 그러나 트리아드는 무한정의 시각과 가능성, '예'와 '아니오'의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회색 음영(각자 서로 다른 상황에서 유효한)을 제시한다.

우리는 항상 3에 노출되어 있다. 모든 전체 사건은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적인 양자와 새로운 전체를 가져오는 외부의 제3의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전체가 되는 과정에서 트리아드는 통일성을 기억하며, 모나드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표현한다.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 다음, 새로운 관계를 나타나게 하는 촉매제 또는 결합 요소를 살펴보라.

출현이라는 극의 입구를 통해 나타난 후, 수소 다음에 잇따르는 모든 원자들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음전하를 띤 전자가 중성인 중성자에 의해 균형을 이루며 회전하고 있는 보로메오 고리처럼 말이다.

햇빛의 순수한 백색광은 3원색(빨강, 초록, 파랑)의 결합이다. 빛의 3원색은 덧셈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서로 더하면 다시 전체적인 백색광이 되기 때문이다.

색의 3원색(빨강, 노랑, 파랑)은 뺄셈의 성질을 지닌다. 직접적인 빛의 색들이 그 표면에 흡수되거나 그 표면에서 '빠져나오고'나서도 원래의 색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빛들이 더해져 흰색을 향해 다가가는 것처럼, 안료의 색들은 빼어지면서 색이 없는 상태인 검은색을 향해 다가간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들이 나타내는 반사된 색은 실제로는 그 물체에 빠져 있는 색을 보여준다. 진짜 색들은 그 물체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반사돼 보이는 빛은 물체에 흡수되지 않고 남은 것이다.

인체의 구조 역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생명은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미시적인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아(骨芽)세포는 혈액 속에서 칼슘을 추출하여 뼈의 주형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뼈를 만들고 오래 된 뼈를 복구하는 일을 한다. 골세포는 뼈의 구성 물질과 강도를 유지하고 복구한다. 파골(破骨)세포는 뼈의 구성 물질을 녹여 혈액 속으로 보냄으로써 오래 된 뼈의 구성 물질을 녹이고 재동화시킨다. 골아 세포는 그것을 다시 흡수해 새 세포들을 만들며, 전체 순환이 계속된다.

삼위일체의 신은 창조자인 브라마와 유지자인 비슈누, 그리고 파괴자인 시바의 모습으로 세 갈래 뼈의 순환 기능을 신비적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행정부는 그 영원한 반대자인 의회와 충돌한다. 그리고 양자 간의 갈등은 중립적인 사법부에 의해 균형을 이룬다. 사법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전하도 가지지 않으면서 양성자와 전자로 하여금 창조적인 상호 작용을 하도록 하여 원자 전체를 이루게 하는 중성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삼위일체의 자신

삼각형은 전세계적으로 신성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상징이다.

기도를 할 때 우리의 양손은 자연히 한 각이 120˚씩 세 갈래를 이룬다. 트리아드의 충동은 아주 강렬하다. 그것은 세상을 모형으로 삼은 우리 자신의 삼위일체의 본성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보석에서 발견되는 삼각형 패턴

트리아드의 원리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전체를 종합함으로써 양극성의 진동을 지나가면, 균형의 기능이 나타나고, 자연의 형태들이 안정한 구조가 되고, 순서대로 질서 잡힌 과정이 실현된다. 우리는 '구조-기능-질서'와 '공간-힘-시간'의 이 삼위일체가 6장과 9장에서 3의 배수인 수들의 원리로 팽창해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우주가 우리 내면의 그 원형적 뿌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3의 속성은 우리가 나머지 우주와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그 속으로 땋여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더 큰 전체 속에 살고 있는 완전한 전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