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반대되는 것은 유익하다.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가장 훌륭한 조화가 나온다.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태어난다.
-헤라클리에토스 Herakleitos;기원전 540?-기원전 480?
그리스의 철학자
2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수보다도 수의 본질, 즉 다자를 일자로 묶고, 복수와
단수를 동등하게 만드는 본질을 더 강렬하게 경험한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하늘과 땅, 낮과 밤, 빛과 어둠, 오른쪽과 왼쪽, 남자와 여자, 나와 너로 나눈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이러한 양극 사이의 분리를 우리가 강하게 느낄수록
우리는 그들의 통일성을 더 강하게 느낀다.
-칼 메닝거 Karl Menninger;1893-1990
미국의 심리학자
□다른 것의 탄생
그렇다면 어떻게 일자가 스스로를 뛰어넘어 다자가 될 수 있을까?
□이중성의 집단
디아드가 통일성으로부터 분리해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서로 반대되는 극들이 자신의 근본을 기억하고, 서로 결합해 원래의 통일 상태로 돌아가려고 서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은 디아드의 역설이다. 디아드는 분리되는 동안에 합쳐지며, 서로 밀어내는 동시에 끌어당기며, 통일성에서 분리되는 동시에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반면에, 역시 둘이라는 의미가 있는 접두사 'tw-'는 결합을 의미한다. 그 예는 two(둘), twin(쌍둥이), twain(짝), between(사이), twine(꼰실), twilight(여명;낮과 밤이 뒤섞인)등에서 볼 수 있다.
양극 사이의 긴장은 모든 탄생과 창조의 뿌리에 존재한다. 성(性)이 서로 반대인 두 사람(그보다 많아서도 안 되고 적어서도 안 된다)이 있어야 아이가 태어난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따뜻하고 습기 찬 공기와 만날 때 비가 내린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는 곳에서 천이 짜인다. 전기 회로를 완성하려면 양극과 음극이라는 두극이 필요하다. 기타 현은 양 끝이 고정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뜯을 때 진동과 소리와 음악이 나온다. 젓가락도 하나는 정지해 있고 다른 쪽이 움직임으로써 음식을 집어 올릴 수 있다. 양극성이 없는 물질(또는 반물질)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디아드는 모든 창조 과정의 기초를 이룬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는 아니마(anima:남성 속에 억제된 여성적 특성)와 아니무스(animus:여성 속에 억제된 남성적 특성)의 양극이 있다.
모든 실체는 자신과 반대되는 것과 마주친다.
재앙을 피하려면 우리는 달리 생각하는 법과 일상생활 속에서 양극화의 함정을 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해도 없어 보이는 말조차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는 우리의 눈을 가린다. 예를 들면, "이 세상은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실체는 다른 곳에 있다" 거나 "내 집은 천국에 있고, 이 세상에 있지 않다" 거나 "이상적인 기하학적 모양들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한 원형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표현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결코 찾지 못할 것이라는 개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바로 앞에 있는 그것을 놓치고 만다. 이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속에 포함돼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한쪽 극이나 다른 극으로 끌리기 때문이다. 양극이 하나의 쌍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상대적인 이중성을 극복하고, 모나드 속에 있는 그것들의 공통 근원에 접근할 수 있다.
함께 상호 작용하여 세상을 만들어낸 빛과 어둠의 양극성을 나타내는 태고의 상징들에는 도교의 음양, 마야의 우나브 쿠(Hunab Ku), '식(飾)'을 나타내는 마야의 그림 문자 등이 있다. 각각의 상징은 그 자체 내에 자신과 반대되는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은 자신을 보완해주는 것을 끝없이 추구하도록 만든다.
□체스판 세상
세계의 많은 종교와 신화 속의 우주론에는 태초에 서로 반대되는 양극이 갈라져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양극 사이의 상호 작용에서 세상이 창조되었다. 신화는 최초의 양극성의 원리가 고대의 언어로 의인화된 것이다.
□원자 사이의 사랑
디아드의 기본적인 특징은 동일한 힘으로 서로 반대의 성질을 가진 쌍들이 존재하며, 이것들은 하나로 돌아가기 위해 합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이 특징을 인력과 척력의 법칙으로 알고 있다. 이 기본적인 양극성으로부터 빛과 에너지, 물질이 생겨난다. 어떤 것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양극성이 존재해야 한다.
▶수소의 문
모나드에서 나오는 문과 같이, 92종의 천연 원소 중 최초로 나타나는 원자는 수소이다. 단 두 개의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유일한 원소인 수소는 디아드의 순수한 표현이다.
수소는 자신이 나온 미지의 통일성(모나드)과 수소원자들의 융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그 다음의 원소들(다자)사이를 잇는 문이다.
□출생의 문
1과 2에 해당하는 고대 수메르의 단어는 남자와 여자였다.
고대의 수학적 철학자들은 1과 2를 수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들의 표현인 점과 선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점은 0차원이고, 선은 1차원이다. 진정한 점이나 선을 손으로 거머쥐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한두 개의 점이나 선 또는 각도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실재적인 형태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렇지만 세상의 기하학적 패턴을 작도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의 점과 선에서 시작하여 계속 진행되는 상호 작용만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모나드와 디아드를 수가 아니라, 수들의 부모로 생각했다.
양자의 결합, 즉 1과 2, 점과 선, 통일성과 차이라는 원리들의 융합은 그 다음에 잇따르는 모든 원형적 원리를 낳으며, 그것들은 수로 나타나고, 숫자로 상징화되고, 자연 속의 모양들로 관찰된다. 여기서 디아드는 일자와 다자를 잇는 통로이다.
1은 자신과 같은 수를 곱했을 때보다 자신과 같은 수를 더했을 때 더 큰 값이 나오는 유일한 수이다. 즉, 1+1은 1x1보다 크다.
2는 자신과 같은 수를 더한 것이 자신과 같은 수를 곱한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유일한 수이다. 즉, 2+2는 2x2와 같다. 2는 1과 그 뒤에 잇따르는 모든 수. 즉 일자와 다자 사이의 균형점을 나타낸다.
▶다자의 탄생
모든 원은 크기에 관계없이 모양이 같기 때문에, 물질이 얼마나 커지든지 상관없이 기하학적 관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통과하는 길
디아드에서 우리는 모나드가 2로 굴절돼 나오는 것을 본다. 디아드는 차이를 강조한다. 디아드는 세계의 분명한 경계와 갈등의 전조를 보여주며, 우리 자신이 지닌 분리의 감각을 메아리로 반사한다. 분리가 시작될 때 반대되는 것들이 나타난다.
디아드의 서로 반대되는 극은 하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양극은 서로 합쳐져 다시 전체가 되려고 한다.
산술의 은유에서 디아드는 자신을 일자와 다자, 통일성과 다른 모든 구성원 사이를 연결하는 문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