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군신(軍神), 치우천왕
1. 치우(蚩尤)의 뜻 : 군(軍)의 우두머리, 군신(軍神)
치우의 뜻을 「삼성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시 수 대(代)를 내려와 (14대)자오지(慈烏支) 환웅이 계셨다. 이 분은 신이한 용맹이 너무도 뛰어나, 구리와 철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며, 구치(九治)를 제작하여 광석을 캐내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제작함으로써 천하가 모두 외경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서는 이 분을 ‘치우천왕’이라 불렀는데, 치우란 말은 속언(俗言)으로 뇌우(雷雨)를 크게 일으켜 산하(山河)를 뒤바꾼다는 뜻이다.”
또 『규원사화』에서는 지위(智爲)라는 말이 ‘힘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란 뜻인데 치우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치우천왕의 또 다른 별칭이 ‘자오지(慈烏支) 환웅’이다. 박현은 ‘자오지’에서 ‘자오’는 ‘땅을 넓힌다’는 뜻으로, ‘지’는 ‘치’로 변하기 전의 소리로 ‘이끄는 사람’이란 뜻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오’는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로 태양을 상징하는 말로 본다. 또 “cha나 chi는 ‘군사의’라는 의미가 있는 고(古)만주․몽골어이고, o나 u는 ‘위’또는 ‘키우다’의 의미가 있으므로 치우는 ‘군의 우두머리’, ‘군사적으로 확대된 군신’ 등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주채혁의 “순록유목민을 가리키는 몽골 말이 chaatang이고 ‘순록을 가진’의 뜻인 ‘축치’족 말이 chaochu”라는 주장을 따르면 ‘차오추’가 한자음 ‘자오지’로 표기되었거나, 우리말(특히 고어) ‘지’ 또는 ‘치’가 아버지, 아파치 등과 같이 남자에 대한 존칭어라면 ‘뛰어난 순록치기’, ‘선임 순록치기’를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은 앞으로 더욱 연구되어야 할 분야이다.
2. 강씨(姜氏)의 시조(始祖)
“판천씨(阪泉氏) 치우는 강씨(姜氏) 성(姓)으로 염제(炎帝)의 후예이다. 전쟁을 잘하고 난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했다. 제(帝)를 따라서 탁록(涿鹿)에 살면서 봉선(封禪)을 하고 호를 염제(炎帝)라 하였다.” (『노사(路史)』 「치우전」)
『환단고기』 「신시본기」에서는 치우천왕이 강씨(姜氏)의 시조라고 하였다.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에, ‘치씨(蚩氏)는 치우의 후손이다’고 하였다. 혹은 창힐과 고신이 다 치우의 후손으로 대극성(大棘城)에서 태어나 산동(山東), 회수(淮水) 북쪽에 옮겨 살았다 하니, 치우천왕의 영풍웅열(英風雄烈)하심이 멀리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를 미루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여상(呂尙-강태공) 또한 치우의 후손이었다. 고로 성이 강씨(姜氏)이니, 치우가 강수(姜水)에 살면서 낳은 아들이 모두 강씨가 되었다.”
3. 구려(九黎)의 천자(天子)
중국의 많은 기록은 치우가 동이(東夷)인 구려(九黎)의 천자(天子)라고 하고 있다.
“구려국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 (『상서전(尙書傳)』)
“응소(應劭)는 ‘치우는 옛날 천자의 호칭이다’라고 하였다.” (『사기집해(史記集解)』)
“공안국(孔安國)은 ‘구려의 임금 호칭을 치우라고 한다’고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
‘구려(九黎)’의 ‘려(黎)’의 다른 소릿값으로 ‘리’ 또는 ‘이’가 있다. 따라서 ‘구려’는 ‘구리’ 또는 ‘구이(九夷)’가 된다. 구이(九夷)는 곧 구려이고, 치우천왕에 의해 다스려진 구려는 배달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4. 청동기 문화를 개창
『사기』의 주석으로 유명한 당나라 때의 역사학자 사마정(司馬貞)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자(管子)는 ‘치우가 노산(盧山)의 금(金)을 얻어 다섯 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당나라 때의 또다른 『사기』의 권위자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 「용어하도(龍魚河圖)」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황제(黃帝)가 섭정하기 전, 치우는 형제 81명이 있었는데 짐승의 몸에 사람 말을 하였고 구리머리에 쇠이마를 하였으며 모래와 돌을 먹었다. 칼․창․큰활 등의 병장기를 만들어 천하에 위세를 떨쳤다.”
이 외에도 치우가 금속으로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수많은 사서의 기록은 금속무기의 원조가 치우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치우시기(BCE 2707년~BCE2598년)에 해당되는 기원전 27세기경에 동아시아 지역은 이미 청동이 사용되고 있었음이 유물로 밝혀졌다. 요서지방과 내몽고 일대에서도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라고 불리는 청동기문화가 기원전 24세기부터 존재했다. 신석기 시대 홍산문화(紅山文化)의 후기 유적인 요령성 건평현 홍산 우하량 유적에서 이미 기원전 3천년 경에 청동기를 제작하였다는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5. 무신(武神)의 원조, 병법(兵法)의 태조
치우천왕은 황제 헌원을 굴복시키고 서방 한족에게 동방의 신교와 천자문화를 전해준 대제왕으로서 병법의 태조이다.
“유방이 풍패(豊沛)에서 군사를 일으킬 때 치우씨에게 제사를 모셨다.” (『포박자』)
“병주(兵主)는 치우씨에게 제사를 지냈다. 치우씨는 만대에 걸쳐 굳세고 용감한 군사의 조상이 되었다.” (『규원사화』「단군기」)
“천주(天主)는 삼신(三神)을 제사하고, 병주(兵主)는 치우천왕을 제사지내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시며, 치우는 만고에 없는 ‘무신용강(武神勇强)의 비조’가 되신다.” (『환단고기』「신시본기」)
팔신(八神)은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양주(陽主), 음주(陰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를 말한다. 천주는 천지만물의 조상인 삼신 상제님을, 병주는 병가의 원시조인 치우천왕을 뜻한다.(『사기』「봉선서」) 주나라 때 혁명의 일들 공신이며 병법의 중시조인 동이족의 재상 강태공도 제(濟)나라에 왕으로 분봉된 뒤 팔신(八神)께 제사를 올리면서 치우천왕을 병주로 모셨다. 이후 진(秦)․한(漢)대에 이르기까지 동이족과 한족은 10월에 치우천왕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때마다 붉은 기운아 뻗쳐올랐으며, 그 붉은 기운을 치우기(蚩尤旗)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둑제’를 지냈는데 고대로부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군신인 치우를 상징하는 깃발에 지내는 제사의식이다. 치우의 머리를 형상화한 ‘둑기’는 소의 꼬리나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대조기(大早旗)’라고 불렀다. 조선은 둑제를 국가제사인 소사(小祀)의 하나로 정비하고 전국에 둑소를 마련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둑제는 서울과 각 지방의 병영․수영에서 각각 시행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 전쟁 중 둑제를 세 차례 거행했다고 기록했다.
‘계사(1593)년 2월 초4일 : 경칩날이라 둑제를 지냈다.
갑오(1594)년 9월 초8일 : 장흥부사로 헌관(獻官)을 삼고, 홍양현감으로 전사(典祀)를 삼아 초아흐레 둑제를 지내기 위해 입재(入齋)시켰다.
을미(1595)년 9월 20일 : 새벽 2시에 둑제를 지냈다.’
서울의 뚝섬에는 원래 둑제를 지내던 둑신사가 있었는데 ‘뚝섬’은 이 둑신사에서 온 이름이다. 둑신사에는 높이 6자 폭 36자의 벽화가 있었는데 치우와 황제와의 싸움인 탁록대전을 그린 그림으로 일제 말기까지 있었으나 분실되었다고 한다.
6. 남방 삼묘족(三苗族)의 조상
묘족은, 중국에서는 치우가 탁록대전에서 황제에게 패한 후 대부분은 남쪽 장강(長江)과 회수(淮水)유역으로 이동하여 삼묘를 형성하였고 후에 다시 요․순․우 등에 의해 쫓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산해경』 등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양자강 이남의 동정호(洞庭湖)와 팽려호(彭蠡湖)일대에는 구려의 후예인 ‘유묘(有苗)’ 혹은 ‘삼묘(三苗)’라고 불리는 부족이 있었는데, 단주(丹朱)와는 사이가 매우 가까웠다. 마침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넘겨준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승복하지 못하고 있던 삼묘의 족장은 단주가 오자 곧바로 세력을 연합하여 요에게 반기를 들었다. 요의 군대가 단주와 삼묘의 연합군을 궤멸시켰고, 이 싸움에서 삼묘의 족장도 피살당하고 단주도 전사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묘족이 남쪽으로 옮겨가게 된 까닭이 되는 사건이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치우를 그저 남방 삼묘족의 족장으로만 보고 있다. 그것은 구려의 군장이 치우이고 묘족은 이 시기에 분파된 북희, 치우를 조상으로 섬겨온 동방족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7. 씨름 문화의 원조
치우는 씨름문화의 원조다. 씨름을 중국에서는 각저희(角抵戱)또는 치우희(蚩尤戱)라고 하고, 씨름 장면이 나오는 고구려 무덤을 각저총(角抵塚)이라고도 하는데서 치우와의 관련성과 모습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씨름은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겨룬다. 우리나라 씨름에서는 샅바를 걸고 서로 겨루기를 하며 쇠뿔 투구는 쓰지 않으나 대신 상으로 뿔이 달린 황소를 주는 것에서 치우문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국내에는 소머리와 관련된 지명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춘천의 옛 지명이 우수주(牛首州)였고, 현재에도 춘천시에는 우두동이 있으며, 전남 여수시 돌산읍의 우두리, 전남 완도군 약산면 우두리, 충남 당진군 당진읍 우두리,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등이 있다.
그리고 산 이름으로서도 춘천의 우두산, 경남 거창군 가조면․가북면의 우두산[별유산],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과 여주군 대신면․북내면에 걸쳐 있는 우두산,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의 우두산 등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당나라 전기소설인 『사소아전(謝小娥傳)』에 우두산이 나오고, 단군 때 기우제를 지낸 비명이 있다는 중국의 우수주(牛首州) 등이 있다.
8. 서양으로 동방문화의 전파
서구 신화학에서는 제우스와 북구의 티우 신(神)들 간의 연관성을 전혀 언급을 못했는데, 근래에는 동방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리스의 제우스 신관을 달리 해석하기 시작하고 있다. 『블랙 아테나』의 저자 버낼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인의 인종적 기원을 셈족과 동양인의 혼혈로 보고 그 원주민을 동양인이라고 한 것에 놀라움을 표한다.
그리스의 신화체계는 이집트와 오리엔트의 영향 아래에 있었는데, 제우스는 디에우스Dyeus라는 최고신이고 ‘제우스Zeus’가 유럽과 북구에서는 ‘찌우Ziu/티우Tiu’로 연결된다. 또한 독일과 노르딕 신화에서는 ‘티르Tűr’, ‘찌우Ziu’, ‘티우Tiu’, ‘티와쯔Tiwaz’로 나타난다.
노르딕의 신 ‘찌우Ziu’는 신화 사전에서 전쟁의 신(God of war)이며 불의 신(God of fire)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장 높은 천신(天神)을 독일 고대 방언으로는 ‘찌우’라고 부르고, 북유럽의 켈트 신화에서는 전쟁신을 ‘티우/Tiw(치우)’라고 부른다.
일부에서는 지중해의 제우스와 북유럽의 티우 신에 대한 호칭이 치우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마치 훈족의 아틸라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나 칭기즈칸이 서양의 중세문화를 무너뜨리고 근세 자본주의 문화를 가져왔다고 하듯이, 지금으로부터 약 4,700년 전, 동방문화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왕으로 병법의 시조인 치우의 서방 경략이 저 멀리 중동을 넘어 유럽에까지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시리즈 1] 『삼성기』 「부록 01. 동방 시원문화의 역사 현장 화보」 중 <동방의 군신 치우천왕>을 옮긴 것입니다. (자료 사진과 사진 설명글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상기 도서를 참고하시면 더 많은 상고사의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