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1] 삼성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대전, 2009]
<서 문>
1. 환단고기란 어떤 책인가?
1) 대한의 한민족, 그 뿌리역사는 무엇인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수십만 권의 왜곡되고 사라졌으나, 한민족의 뿌리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문헌이 현존하고 있다.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와 계연수의 『환단고기』외에 일연의 『삼국유사』등이 그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미 불교의 안목으로 윤색되어 시원역사의 전모를 볼 수는 없으나, 우리 역사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내용이 남아 있기에 역시 소중한 자료이다.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 계연수(?~1920)가 안함로(579~640)와 원동중(고려말로 추정)의 『삼성기』, 행촌 이암(1297~1364)의 『단군세기』, 범장(?~1395)의 『북부여기』, 이맥(연산군~중종)의 『태백일사』들을 한 권으로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책이다. 여기에는 잃어버린 한민족의 7천년 상고 역사와 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듯 한만족의 정통사서들이 분명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연구되고 교육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현 역사학계에서 환단고기를 100% 조작된 책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강단 사학자들은 '문화(文化)', '평등(平等)'같은 근대적 술어가 있다는 등의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환단고기에 대해 위서 운운하는 역사학자들 대다수는 '한민족의 정신사'(신교의 삼신 우주관)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서 우리 역사를 보는 올바른 안목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동방의 시원역사를 원형 삼신문화의 역사관으로 기록하고서도 제 나라 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 역사서들은 뿌리문화가 말살된 한민족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
물론 이 책의 사료적 신빙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도 있다. 그 예로 고려 공민왕 때의 좌정승이자 단군세기의 저자인 행촌 이암의 생애를 상세히 연구한 한영우 교수는 현재의 단군세기가 후세에 가필된 부분은 있으나 행촌이 지은 모본(母本)을 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강단사학에서 위서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한가람 역사문화원 이덕일 소장은 "그들 비판의 상당부분이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끝에 나온 '본질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자구의 사용례'에 매달리는 지엽적인 부분에 얽매인 감이 없지 않다."고 하면서 "굳이 전해진 책을 조작할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의 전통 사서인 환단고기를 무조건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서의 문화의식, 살아온 삶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2)사서 가치와 사료 정신
환단고기는 동방 문명의 실상을 밝혀주는 정통사서의 최종 결론이자 동방 상고 역사서의 최고 고전이다. 신라 고승 안함로로부터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약 천년의 세월에 걸쳐 저술되어, 일제 때 독립투사 계연수가 합본한 뒤, 마침내 1979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환단고기는 한국 예찬론이나 동정론을 쓴 것이 아니라 우리 동방 역사의 진실을 기록한 신교문화의 도가사서(道家史書)다. 우리는 이 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이해에 앞서 이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와 의의, 그리고 이 책이 간직해 온 숭고한 역사와 문화 정신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첫째, 천지의 광명정신과 역사정신인 환(桓), 단(檀), 한(韓)의 원 뜻에 대해 밝혀주고 있다.
둘째, 동방 문화의 뿌리역사를 밝히는 한민족사의 대성서(大聖書)이다.
셋째, 한민족의 시원종교이자 동서양 인류 문화의 근원종교Urreligion인 신교의 실상과 세계관을 밝히는 한민족 고유의 도가사서의 결정판이다.
넷째, 한민족사의 국통맥을 바로잡아 놓은 유일한 사서이다.
그 누구도 성서가 없는 기독교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유대족의 역사서를 구약성서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동방 역사의 원형문화(신교의 삼신문화)의 눈[史眼]으로 쓴 우리 한민족사의 역사 성서라 할 수 있다.
환단고기는 동방 한민족의 뿌리역사의 웅대한 실상을 신교문화의 삼신 역사관으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신화 저편의 세계로 또는 미개한 선사시대로 왜곡되었던 동방의 고대사는 근본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하며, 세계문명의 기원과 고대 중국사와 일본사에 대해서도 새로운 역사해석의 체계를 세워야 한다.
역사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천지의 자녀로 살아가는 인간의 가장 의미 있는 정신활동의 기록인 것이다. 무정신의 역사는 죽은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 역사에 담긴 동방문화의 원형정신의 본래 면목을 보여주는 본서는 충격적인 고대사 실상의 핵심문제들을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 환단고기 성립사
1) 환단고기의 구성
환단고기는 해학 이기 선생이 교열하고 운초 계연수 선생이 합편한 것으로,
① 삼성기 상(안함로 撰)
② 삼성기 하(원동중 撰)
③ 단군세기(이암 編)
④ 북부여기 상·하(범장 編)
⑤ 태백일사(이맥 撰)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태백일사는
① 삼신오제본기
② 환국본기
③ 신시본기
④ 삼한관경본기
⑤ 소도경전본훈
⑥ 고구려국본기
⑦ 대진국본기
⑧ 고려국본기의 8편이 합편되어 있다.
총 다섯 사람이 찬술한 열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5개 사서를 계연수가 광무(光武) 15년(1911) 5월에 합편하였다.
그 외에 환단고기가 인용·소개한 현재 전하지 않는 문헌들은,
① 대변경
② 표훈천사
③ 고려팔관기
④ 배달유기
⑤ 삼한비기
⑥ 삼성밀사
⑦ 신지비사
⑧ 오제설
⑨ 유기
⑩ 태백진훈
⑪ 진역유기
⑫ 진단구변도
⑬ 조대기 등이다.
이 가운데 대변경, 삼성밀기, 조대기는 안함로·원동중의 삼성기와 더불어 세조가 8도 관찰사에게 수거하도록 명한 유시의 내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 환단고기의 저자와 내력
동방 한민족의 시원역사와 인류 상고사의 실상을 밝혀주는 환단고기는 그 출간된 내력 속에도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감수한 해학 이기(1848~1909)는 전북 만경 출생으로 실학을 연구, 유형원·정약용 등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한 때 전봉준 장군과 거사를 도모했던 인물로, 1894년 동학혁명 때 동학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 김개남의 반대로 구례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왔다.
1905년 포츠머스조약을 체결할 때 그는 한국의 처지를 호소하려고 나인영(나철, 1863~1916)과 미국에 가려 하였으나 일본공사의 방해로 가지 못하고, 그해 일본으로 가서 일왕과 정계 요인에게 조선 침략을 규탄하는 서명항의를 하였다. 그리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하여 한성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장지영, 윤효정 등과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를 조직, 항일운동과 민중계몽운동에 헌신하였다.
1907년 나인영, 오기호, 윤주찬, 김인식 등과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이 일로 체포되어 7년의 유배형을 받고 진도로 귀양 갔다. 해배(解配) 후 민중계몽운동을 하다가 국세가 기울어지자 기유(己酉 1909)년 5월 25일, 절식(絶食)으로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63세). 저서로는 『해학유서』가 있으며,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환단고기를 엮은 운초 계연수는 해학 이기의 문인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대, 서로군정서, 의민사, 벽파대, 기원독립단 등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인 스파이에게 1920년 피살되었다. 묘향산 단군굴암에서 썼다고 하는 환단고기는, '대한독립단 부총재였던 청산리대첩의 영웅 홍범도와 정의부 총사령관이었던 오동진(1889~1944) 양우(兩友)의 출금으로 출간'하였으며, 동방 창세 역사서의 출간에 대해 '우리 한사람 각자의 자아발견과 민족문화의 표출이념과 세계 인류의 공존이념을 위한 큰 축복의 성사'라고 그 책의 범례에서 감개무량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운초는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탑본(搭本)하여 1917(丁酉)년 1월 10일 서울의 단군교당 앞으로 보냈는데, 단단학회 이유립(1907~1986)의 전언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다음 경신(庚申 1980)년이 되거든 세상에 내놓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천마대 대장 최시흥에게 전해졌고 다시 서로군정서 이덕수를 거쳐 해방 후 평양의 기관지 『태극』에서 활동하던 이유립에게 전해졌다. 이유립은 기관지 태극에서 신탁통치반대론을 주장하다 일시 구속되었고, 이후 월남에 성공하여 1949년 봄 오형기에게 정서(正書)를 위촉하였다.
(1911년 5월에 운초 계연수가 삼성기 상, 삼성기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다섯 사서를 환단고기 한 권으로 합편하고, 해학 이기가 교열하여 30권 한정본으로 발간하였다. 1949년 이유립은 월남하며 가져온 환단고기를 오형기에게 필사하게 하였다. 그러나 원본은 화재와 홍수로 분실하였다.
1979년 조병윤이 이유립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오형기의 필사본을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100권을 발행하였다.
같은 해 이유립은 배달의숙(倍達義塾)에서 오형기필사본에 있는 오자 일부만 수정한 채 전형배로 하여금 오형기의 발문을 제외한 것 100부를 영인 인쇄케 하였다.)
3) 위서논쟁
일부 학계에서 특히 강당사학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논쟁이 끊이지 않는 몇 가지 핵심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현재 전해지고 있는 환단고기는 1949년 이유립이 오형기에게 정서케 한 것인데, 원본과 인쇄본, 필사본 등이 사라지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저술된 시대와는 다른 근대적 용어가 사용되고 비전문가의, 즉 역사가에 의하지 않은, 필사와 인쇄 등을 통하고 보니 본문과 주해가 혼동되어 그 진실성에 의구심이 확대되고 결국엔 위서 논쟁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환단고기는 위서라며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나오는 학자들은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에서 모순되는 연대 기록과 국제관계 기술이 발견되고, 국가․문화․인류․세계 등 근대적 용어 사용, 그리고 삼신일체론․천지창조 개념이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점 등으로 트집 잡아 기독교 사상에 익숙한 근대의 인물이 위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마디로 동방의 주인공인 한민족의 역사관의 기반인 신교삼신문화의 우주관, 신관, 인간관, 문화 예술관, 역사관 등을 전혀 볼 줄 모르는 철학 없는 위인들의 소견일 뿐이다. 그들은 현존자료를 놓고도 기록의 진실성과 의미를 밝히려 하기보다는 곁가지로 흐르는 허점만 찾아 부각시킴으로써 핵심 내용까지 모두 부정하려드는 것이다. 이 책을 엮은 운초 계연수 선생이나 감수자인 해학 이기 선생, 출간을 한 이유립 선생은 모두 20세기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근대적 언어로 가필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필이 ‘꼭’ 위작이 될 수는 없다. 일부 술어와 연대 고증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으나 한민족사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인류의 시원사와 한민족사의 국통, 한문화 뿌리의 심층구조와 대세를 보는 데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음을 단언하는 바이다.
환단고기의 내용 중 몇몇 가필된 부분은 대일항전과정을 치르던 복잡한 상황에서 삽입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또는 이유립이 대전에 거주할 때 인물, 연대, 장소에 대해 오착된 내용과 부족한 일부 내용에 가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조작과 첨삭의 의도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꼭 이뤄져야만 하는 보정(補正) 작업인 것이다. 더구나 그 보정도 미미한 정도에 그친다. 이것은 본서를 읽으면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류사의 각종 경전들도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으로 성립되었다. 예를 들어 주역,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구성된 노자의 도덕경, 황제 헌원을 가탁(假託)하여 한 대에 성립된 동양의학의 성서 황제내경, 불교의 팔만대장경 가운데 화엄경 등이 모두 그러하다. 잘못 기록된 연대, 인물, 사건들은 다른 역사기록과 비교하면서 수정, 보완 가필할 수 있는 것이다.
진서론자들 가운데는 독특한 방법으로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를 발굴해낸 경우도 있다. 특히 환단고기에 나오는 기록과 중국사서와 발굴유물을 비교 검토하여 환단고기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 사실들을 찾아냈다. 이것은 환단고기가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날조된 책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단서라고 할 수 있다. 단군세기의 초기 천문기록이 과학적 사실로 밝혀지자 윤내현 교수는 “환단고기는 서지학적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중도적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환단고기가 사료적 진실성이 있다는 심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지학적 검토 없이 활용하는 데에는 반대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우리 역사학의 특수한 현실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고대사 복원의 단초를 제공할 문헌사료의 종합정보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과 인류의 시원문화와 황금시절을 되찾아 새 역사의 문을 여는 성전(聖典)으로서 결코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사서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시개천 5907년, 기축(己丑 2009)년 정월 보름을 맞으며 환단고기에 대한 이 해제의 머리글을 역주자의 서문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증산도 종정
安 耕 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