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易曰 自天祐之라 吉无不利라 하나니

(역왈 자천우지라 길무불리라 하나니)

子曰 祐者는 助也니 天之所助者는 順也요 人之所助者는 信也니

(자왈 우자는 조야니 천지소조자는 순야요 인지소조자는 신야니)

履信思乎順하고 又以尙賢也라 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니라

(이신사호순하고 우이상현야라 시이자천우지길무불리니라)


역(易)에 "하늘이 돕나니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우(祐)란 돕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이] 천리(天理)에 순응(順應)하기 때문이며,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이] 신의(信義)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신의(信義)를 성실히 실천하고 천리에 순응(順應)할 마음을 갖고 또, 현인(賢人)을 숭상(崇尙)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하늘이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 書不盡言하며 言不盡意하니

(자왈 서불진언하며 언불진의하니)

然則聖人之意를 其不可見乎아

(연즉성인지의를 기불가견호아)

子曰 聖人이 立象하야 以盡意하며

(자왈 성인이 입상하야 이진의하며)

設卦하야 以盡情僞하며 繫辭焉하야 以盡其言하며

(설괘하야 이진정위하며 계사언하야 이진기언하며)

變而通之하야 以盡利하며 鼓之舞之하야 以盡神하니라

(변이통지하야 이진리하며 고지무지하야 이진신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글은 말하는 것을 다 담아낼 수 없고, 말은 마음에 품은 생각을 다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께서 마음으로부터 전해주고자 하셨던 핵심(聖人之意)을 알 수 없다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성인께서 상(象)을 세워 전해주고자 하셨던 핵심을 다 나타내셨고, 괘를 베풀어 [천지와 만물의] 자연적 실정(實情)과 그것을 바탕으로 지어낸 인위(人爲)적 문명(文明)의 근본 틀을 다 알게 하셨고, 글귀를 매달아 그것에 대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다 담아내셨고, [괘효(卦爻)가] 변화(變化)하고 소통(疏通)하는 이치를 밝혀서 [이치와 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이로움에 대하여 다 드러내셨고, 북치고 춤추게 하여 신(神)을 다 알게 하셨다."라고 하셨다.


乾坤은 其易之縕耶인저

(건곤은 기역지온야인저)

乾坤成列에 而易立乎其中矣니

(건곤성렬에 이역입호기중의니)

乾坤毁則无以見易이요 

(건곤훼즉무이견역이요)

易不可見이면 則乾坤이 或幾乎息矣리라

(역불가견이면 즉건곤이 혹기호식의리라)


건(乾)과 곤(坤), 이것이 역(易)의 씨줄과 날줄의 원질(原質)로써 역의 근본이로다!

건과 곤이 배열됨에 역이 그 가운데서 성립한다.

건곤(乾坤)이 훼손되면 역(易)이 드러날 길이 없다. 역(易)이 드러나지 않으면 건곤(乾坤)조차 식멸(熄滅)해 버리고 말 것이다.


是故로 形而上者를 謂之道요 形而下者를 謂之器요

(시고로 형이상자를 위지도요 형이하자를 위지기요)

化而裁之를 謂之變이요 推而行之를 謂之通이요

(화이재지를 위지변이요 추이행지를 위지통이요)

擧而措之天下之民을 謂之事業이라

(거이조지천하지민을 위지사업이라)


그러므로 형상(形象)하였으되 그 이상 너머에 있는 것을 도(道)라 하고, 형상(形象)하였으되 그 아래에 있는 것을 기(器)라 한다.

[천지의 도기(道器)를] 본받아 그것을 사람의 일에 적용하여 [천지의 도리(道理)에 부합하게] 재량껏 변경해서 씀을 일컬어 변(變)이라 하고, 그 변용(變用)이 이리저리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막힘이 없음을 일컬어 통(通)이라 하고, 그 변통(變通)의 일을 크게 일으켜 천하 백성들에게 이롭도록 베푸는 것을 일컬어 사업(事業)이라 한다.


是故로 夫象은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야

(시고로 부상은 성인이 유이견천하지색하야)

而擬諸其形容하며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요

(이의저기형용하며 상기물의라 시고위지상아요)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야 以觀其會通하야

(성인이 유이견천하지동하야 이관기회통하야)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야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니라

(이행기전례하며 계사언하야 이단가갈흉이라 시고위지효니라)


이런 까닭에 상(象)이라고 하는 것은, 성인이 천하의 심오한 이치를 살펴서, 다양한 사물(事物)의 형태와 모습에 빗대어 사물 본연의 이치를 형상화하셨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상(象)'이라 한다.

성인이 천하의 [다양한 사물의] 변동(變動)을 두루 살펴서, 그 모두에 공통(共通)되고 그 모두에 똑같이 통용(通用)되는 이치를 드러내고, 그 이치에 상응하는 법도(法度)와 의례(儀禮)를 행하셨으며, 글귀를 달아 [사람들이 성인이 정한 전례를 행할 때 각자의] 길흉을 판단케 하셨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효(效)'라고 한다.


極天下之賾者는 存乎卦하고 鼓天下之動者는 存乎辭하고

(극천하지색자는 존호괘하고 고천하지동자는 존호사하고)

化而裁之는 存乎變하고 推而行之는 存乎通하고

(화이재지는 존호변하고 추이행지는 존호통하고)

神而明之는 存乎其人하고 黙而成之하며 不言而信은 存乎德行하니라

(신이명지는 존호기인하고 묵이성지하며 불언이신은 존호덕행하니라)


천하의 다양한 사물 속에 감추어진 심오한 이치를 밝혀 알아내는 것은 괘(卦)에 있고, 천하의 다양한 사물의 변동(變動)을 측량하여 담아내는 것은 괘사(卦辭) 효사(爻辭)에 있고, 이화(理化)하여 재단(裁斷)해 씀은 [괘와 효의] 변화의 이치에 있고,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변용(變用)함은 [서로 다른 괘와 효가] 상통(相通)하는 이치에 있고, 신묘(神妙)하게 하고 밝게 드러내는 것은 [역(易)의 이치에 통(通)하고 순응(順應)하여 따르는] 그 사람에게 있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이루어가며 말하지 않고도 미덥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덕행(德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