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와 편저자 계연수
1909년 3월 16일 대한자강회의 해학 이기 선생은 계연수, 김효운, 이정보 선생 등과 함께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일제가 말살한 단군 조선 삼한의 역사 회복을 위해 ‘단학회(檀學會)’를 조직하였다. 이기 선생은 단학회 발기총회를 앞두고 한일합방의 국치에 비분을 참지 못하여 서울의 모 여관에서 단식 중에 7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이기 선생이 단식 끝에 운명하시자 계연수 선생이 이기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2대 단학회 회장이 되었다. 1910년 10월 3일 단학회 제 2대 회장에 취임한 계연수 선생은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권을 빼앗겨 주체성을 상실하였고 모든 백성들은 암울한 슬픔에 잠겨있었다. 특히 지식인들은 단군 조선의 역사 말살에 울분을 참지 못하였다. 계연수 선생은 나라의 독립은 오로지 민족역사(민족정기)로부터 시작되고, 단군사상을 회복하는 것만이 우리민족의 살길임을 직시하고 일제가 말살한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를 밝힌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5권을 한 대 묶어 ‘桓檀古記(환단고기)’를 편집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三聖記),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삼성기는 신라의 승려인 안함로 선생과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 선생이 쓴 것을 각각 상, 하권으로 구분하여 합친 것으로 환인 천제, 환웅 천황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사학자 서량지가 밝힌 바 있는 인류의 시원지 바이칼호로부터 시작해 우리 민족의 시발인 환국시대 3301년간의 7세 환인, 신시시대의 커발환(倍達) 환웅으로부터 18세 거불단(居弗檀) 환웅까지 1565년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하권엔 <신시 역대기>가 첨부되어 있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에 살았던 문정공(文貞公) 행촌(杏村) 이암 선생이 전한 책으로, 초대 단군 왕검으로부터 47대 단군 고열가(古列加)까지 2096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한 사건들을 편년체로 기록해 놓았다.
북부여기는 고려 말의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 선생이 전한 책으로, 상권, 하권, 가섭원 부여기로 구성되어있으며, 시조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6세 고무서 단군까지의 204년과 가섭원 부여 108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태백일사는 행촌 이암 선생의 현손이자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인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선생이 전한 책으로, 환국, 신시시대로부터 고려에 이르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즉 여기엔 <삼신오제 본기>, <환국 본기>, <신시 본기>, <삼한관경 본기>, <소도경전 본훈>, <고구려국 본기>, <대진국(발해) 본기>, <고려국 본기>가 포함되어 있으며, <삼한관경 본기>엔 마한세가 상, 하와 번한세가 상, 하가 담겨있다. 또 환인 천제의 환국부터 전해 내려온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실려 있다.
계연수 선생은 이 책이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거쳐 자신이 고쳐가며 바로잡았다고 했다.
1911년 계연수 선생은 곧바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선생 등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아 일제가 말살한 삼성(三聖)-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 ‘환단고기’ 30권을 편찬하였다. 30권의 환단고기는 대부분 일제에 압수당해 불태워 졌지만 다행히도 몇 권은 독립운동가 안창호 신채호 선생 등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신채호 선생은 장차 우리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자 1910년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등과 중국에 망명해 있었다.
1914년 계연수 선생은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참배하고 남만주 관전현 홍석납자로 옮겨가 독립운동단체인 천마대, 서로군정서, 의민사, 벽파대, 기원독립단 등과 연계하여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시 계연수 선생이 편찬한 환단고기는 단군 조선 삼한의 역사를 말살하려던 일본제국의 흉계에 큰 위협 요소가 되었다.
1923년 계연수 선생은 결국 조선독립군으로 위장한 일본인 밀정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나라를 강탈한 일본인들은 계연수 선생을 처형한 뒤 머리와 사지를 절단한 후 머리는 대동강물에 던지고 몸통과 사지는 압록강에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계연수 선생의 서거 이후 독립군 천마대(天摩隊) 대장 최시흥(崔始興)선생이 단학회를 계승하였으나 이석주, 이상룡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펼치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역시 일본 밀정에게 붙잡혀 살해당했다. 다시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장군과 함께 혁혁한 무공을 세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이덕수(李德秀) 장군에게 단학회가 이어졌으나 이덕수 장군 역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단학회는 침체되었고 환단고기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17년 1월 10일에 묘향산에서 서울의 단군교당 앞으로 서신과 함께 환단고기와 천부경 탑본(搭本)한 것을 보내면서, ‘환단고기는 다음 경신년(1980년)이 되거든 세상에 내놓으라.’고 하였다고 한다.
1980년 단단학회(檀檀學會)의 이유립 선생이 계연수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재판 100권을 발행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